일상적 소재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아트' 작가
제작비 35억 들어간 '스프링' 놓고 '명물-흉물' 평판 갈려

청계천의 상징, 소라모양의 조형물 ‘스프링’을 만든 미국의 팝아티스트 올든버그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서울 청계천의 조형물 ‘스프링(Spring·2006)’을 만든 현대미술가 클라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29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올덴버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1956년 뉴욕으로 이주, 일상적인 물건 모습의 대형 공공조형물로 이름을 알린다. 빨래집게·숟가락·담배꽁초·톱·햄버거 등을 재치있고 초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발함이 특기였다. 미국 필라델피아 市청사의 ‘빨래집게’(1976), 독일 카셀 도쿠멘타의 ‘곡괭이’(1982),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스푼브리지와 체리’(1988), 도쿄 국제전시센터의 ‘톱, 톱질’(1996) 등이 대표적이다.
 
골판지나 더러운 신문 등 쓰레기로 만든 1960년작 ‘거리’(The Street)와 임대한 상가에 석고로 된 드레스·신발·디저트 등을 전시한 ‘가게’(The Store·1961) 등 초기 작품도 유명하다. 올덴버그의 부고를 계기로, 뉴욕 예술계의 역사이자 산 증인인 ‘폴라 쿠퍼 갤러리’(1968년 개관)가 논평을 냈다. "놀랍게 독창적"이며 "사상의 자유와 급진적인 표현방식으로 여러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익숙한 것을 낯설고 활기찬 생명체로 기묘하게 변형시켰다"는 점도 지적했다.
 
청계천 초입의 높이 21m 무게 9t 다슬기 모양 조형물 ‘스프링’은 올덴버그가 아내 코샤 반 브루겐(1942~2009)과 공동 제작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과 샘의 원천, 흘러내린 한복의 옷고름,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프링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한다." 올덴버그가 한국 방문 당시 밝힌 내용이다.
 
그런데 약 35억 원 들어간 ‘스프링’을 둘러싸고 ‘명물이냐, 흉물이냐’ 평판이 엇갈린다. "세계적인 작가가 만들었음에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라는 장소성 및 역사성이 결여돼 있다"(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등, 현재까진 전문가들의 혹평이 우세하다. 일반 시민 역시 이 조형물에 대한 심미적 공감의 기회가 적다. ‘평론’에 의해 비로소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재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에, 보다 적극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공공미술’은 보편적 대중 정서와 심미성을 겸비해야 한다. 이와 동떨어진 조형물이 전국에 많다는 지적이다. 한 사회의 전반적 ‘미의식’수준이란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 압축 근대화를 거친 대한민국이기에 아쉬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세금으로 지어진 도시 조형물에 대한 일반의 감시안과 심미안을 높이고자 애써야 하겠지만, 지독한 ‘악평’에 시달리다 ‘최고의 상징물’이 된 경우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사례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다. 뉴욕항 ‘자유의 여신’상 제작자이기도 한 구스타브 에펠(1832~1923)이 당대의 기술과 상상력의 총합으로 탄생시켰다. 다만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태어나 조만간 철거될 운명의 ‘임시 건물’이었다. "아름다운 도시를 망치는 흉물"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제작자 에펠이 나서, 그 과학적 쓰임새를 증명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간신히 철거를 막았다. 청계천 조형물 역시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새로운 역사성과 가치를 획득하게 될지 모른다.
 
청계천의 상징 조형물 ‘스프링’의 작가 팝아티스트 올렌버그(오른쪽)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세상을 떠났다(향년 93세). 사진은 팝아티스트로 함께 활동한 올렌버그 부부의 2009년 모습. /게티이미지
청계천의 상징 조형물 ‘스프링’의 작가 팝아티스트 올렌버그(오른쪽)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세상을 떠났다(향년 93세). 사진은 팝아티스트로 함께 활동한 올렌버그 부부의 2009년 모습.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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