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홍성기

2022년은 후대에 어떤 해로 기억될까? 아마도 ‘끝의 시작’으로, 그러니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망치질에 모루 역할을 하던 종북세력이 붕괴하기 시작한 해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모루에는 뭐가 올려졌었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다.

해방 후 좌우 격돌의 시절, 김일성 남침 전야 박헌영의 남로당을 연상시키듯, 지난 10월 초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북한의 미사일과 제7차 핵실험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의 연합훈련을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이재명의 이 발언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공동으로’, 그러니까 북의 김정은이 망치질을 할 때 남의 종북세력이 모루가 되어 같이 두들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점은 현 민주당 의원이자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던 김병주의 ‘일본 자위대의 한국 상륙 가능성’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국 좌파의 긴 꿈, 즉 통일 후 한반도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의 전체주의와 호환 가능한 정치체제로 만들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한 한미동맹 약화의 논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었던 자가 이런 발언을 했다면, 앞에서 언급한 ‘끝의 시작’에서 끝이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지난 10월 22일 ‘다시 한번 촛불 바다’를 꿈꾸던 한국의 좌파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들은 같은 시각 같은 거리에 나선 태극기 세력에게 수적으로 완전히 제압됐다. 촛불 방화의 목적지인 용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런 가시적 패배와 함께 어쩌면 더욱 중요한 점은, 현 한국 좌파의 정신 상태가 막장에 도달했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이라는 그들의 구호는 아무런 대중적 호소력이 없었다. 이들이 ‘촛불의 황금시대’라고 그리워하는 2008년 광우병 집단 광기에는 왜곡과 선동에 의한 ‘광기’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윤석열 정권을 타도할 어떤 명분, 믿고 싶은 그럴듯한 거짓말조차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다시 한번 광화문에서 촛불 바다를 보고 싶다는 거친 욕심, 그것뿐이었다.

이처럼 명분이 없는 억지 춘향 촛불 모으기에 과거 광우병 촛불 주도 세력이 다시 모였다. 우희종 교수의 참여는 광우병 촛불시위의 동기 역시 국민 건강이나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 계산이었음을 소급 추론하게 만들었다. 또 백낙청 교수가 ‘윤석열에게 탄핵보다는 퇴진을 권했다’는 것은 이제 한국 좌파가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한다.

즉 지난 문재인 정권이 이룬 찬란한 종북 업적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후 급격히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죽창가 한일외교, 중국몽 사대외교, 사드 뒷통수 치기, 해수부 공무원 월북몰이, 탈북민 강제북송 등등 거의 매조키스트에 가까운 김정은 비위 맞추기의 긴 리스트가 구겨지면서, ‘북한 전체주의 호환형 통일’의 집요한 꿈이 깨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국의 좌파는 문재인 정권을 거치고 지난 대선 과정과 그 이후 이재명이 당 대표가 되면서, 상식도 교양도 윤리도 양심도 사라진 정치적 부도 직전 상태에 돌입했다. 이번에 실패한 촛불시위의 구호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은 1997년 IMF 시절 파산 직전의 한 은행이 ‘연리 35% 예금’을 내건 것과 흡사하다. 몇몇 사람은 이런 고금리에 유혹당했을지 모르지만, 그 은행은 사라졌다.

혹자는 11월에 다시 한번 촛불이 바다를 이룰 것이라는 꿈을 꿀지 모른다. 하지만 2016년 겨울 날씨가 추워지자 매번 광화문에서 술판을 벌이던 촛불시위도 급격히 꺼지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을 넘기면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박근혜 진실 찾기로 단련된 바로 태극기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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