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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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각지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시위는 시진핑 주석의 힘이 상상한 것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이 시위의 발단은 11월 24일 위구르자치구 우르무치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이다. 이 화재사건으로 10명이 숨졌다. 문제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주민들 외출이 금지되고 아파트 앞에 장애물을 설치했기 때문에, 조기 진압에 실패해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우루무치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상하이를 비롯한 각지에서 동조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시위대는 시진핑 국가주석 및 공산당서기 퇴진 요구까지 하고 있다. 중국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시위대의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1989년 5~6월 톈안먼 시위 때 필자 스스로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당시 덩샤오핑은 1976년 사망 때까지 수십 년 절대권력을 누린 마오쩌둥보다 자유주의적 지도자로 비쳐졌다. 실상은 달랐다. 마오의 유산을 영구화하려던 4인방이 숙청된 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밀어붙여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는 수천 명 병력을 톈안먼 광장에 보내, 1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시위를 진압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시진핑에 대한 시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시위가 개혁을 촉발할 것도,극적인 권력 이양이나 민주적 통치로의 전환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 내 반정부 시위는 다른 곳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경을 맞댄 북한은 중국에서 일어난 시위 관련 뉴스를 강력 통제하고 있다. 중국의 시위가 북한으로 번질까봐 김정은은 내심 떨고 있을 것이다. 북한 내 뉴스라고는 최근 그가 열 살도 안된 딸을 데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 발사 현장에 나타난 것뿐이다.

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 시위에 관한 소식을 알지 못하도록 완벽 통제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소문은 흘러들어갈 것이다. 물론 김일성 치하 북한은 1989~1991년 소련·동구권 해체에도 끄떡없었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소련의 몰락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는 북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소련으로부터의 공산품·석유·천연가스·식량 공급이 끊긴 1990년대 북한에서는 200만 명 이상이 질병과 기근으로 사망했다.

그래도 시대는 조금씩이나마 변화해왔다. 휴대전화, 정보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석유와 식량을 공급받으며 정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처지다. 중국은 북한의 ‘산소호흡기’인 것이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 시위대 소식도 북한 주민들에게 닿으리라 본다.

시진핑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이 확산돼 자신의 통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전, 경찰 병력을 배치할 것이다.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국민들의 자유화 요구가 달가울 리 없다. 대만은 이번 시위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시진핑은 시위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분산시키고자 대만 인근 해상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손을 쓸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실제 행동으로 옮길 준비는 전혀 안되어 있다.

이번 시위로 시진핑의 야심찬 계획들은 일단 뒷전으로 미뤄둬야 할 것이다. 시진핑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전함이나 전투기들이 떠날 것을 요구하거나 필리핀을 괴롭히지도 못할 것이다. 시진핑은 세계 패권 야망과 제국주의적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기 전 자국 내 급한 불부터 꺼야 할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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