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김대호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이 말은 비전의 중요성을 말할 때 종종 인용된다.

문제는 이를 장밋빛 미래상을 그린 멋진 구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들의 국정 비전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비전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이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정부도 다 멋진 국정 비전이 있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의 가치·비전·치적은 그 대립물, 즉 온힘을 다해 싸운 적(모순 부조리)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이것이 모호하거나 단지 야당이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에 해당하는 것은 구호성 국정 비전이 아니라, 당·정·대가 체화한 감동적인 서사(敍事) 내지 내러티브(narrative)다. 나(대통령) 혹은 우리(국가·정부·정당)는 누구인지, 시대적 과제와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설명이다. 그 핵심은 1987년 체제 내지 민주화의 성격과 한계에 대한 통찰이다.

역사가 가르쳐 주듯이 민주화는 원래 쉬운 것이 아니다. 민주화에 내재한 모순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성취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다. 권리와 권리,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 자리와 역량의 현격한 불일치를 정치와 정부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인구·지방·재정·연금·산업·정신문화·사회통합과 안보 등 다방면에서 지속가능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명하고 대안을 담은 ‘서사’가 윤 정부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른다. 윤 정부의 서사도 매우 부실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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