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김대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규모 압사 사건은 화재, 폭발물 경보나 경찰·군인의 발포 등이 초래한 군중의 패닉(panic) 상황에서 일어났다. 즉 정신적 공황(恐慌) 상태에서 무질서하게 달아나려다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패닉 상황이 아니었다. 윗길과 아래 길을 잇는 길은 사고가 난 길 외에도 여러 개 있었다. 대개의 경우는 군중들은 공권력의 통제·유도가 없어도 우측 통행방식으로 상하행 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뒤에 온 군중들은 다른 골목길로 우회한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이태원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극히 일부인 몇 천 명이 문제의 골목길로 집중되면서 일어났다. 경찰이나 구청 공무원 여러 명이 완장을 차고 메가폰을 들고 그 시간, 그 골목길을 지키고 서서 통행을 통제했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가 보고 오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다. 현미경을 들이대면 경찰과 구청의 허물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사고와 인과관계가 명확한 직무유기를 찾는 것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원래 한번 일어나기도 힘들지만 학습 효과 때문에 두 번 다시 일어나기는 더 힘들다.

문제는 군중의 패닉에 의한 참사 가능성이다. 우리나라는 지하철·공연장·집회장 등에 군중이 몰리는 일이 잦다. 그런데 화재·지진·폭탄 테러와 북한 폭격 등 패닉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적지 않다. 이제는 이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사고를 진짜 위험에 대한 예고편이나 전주곡으로 보고, 국가의 세련된 자유 통제와 시민 스스로 만들어내는 질서를 결합하여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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