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최영훈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5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까지 40%가 넘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인다. 임기 초 80%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과 조국 사태에도 평균 40%대 지지율을 유지한 바 있다. 그러니 문통이 "우리 정부에는 말년이 없다"면서 "마지막까지 민생 회복에…."라고 큰소리를 칠만 하다.

임기 3년차 총선 때 여당이 180석(위성정당 포함)을 차지한 압승을 거둔 게 발판이었다. 총선 승리 후 2020년 4월 한때 지지율이 70%를 넘기도 했다. 그래서 헌정 사상 최초의 레임덕 없는 대통령의 탄생을 점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러나 임기 ‘4주년의 저주’는 문 대통령에게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작년 4·7재 보궐선거 직전 LH 사태의 발생은 치명적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까지 떨어졌으며 여당은 참패했다. 지지율 조사에서 인기조사보다 의미가 큰 국정수행 긍정률은 29%까지 하락한 바 있다.

이후 한미정상 회담과 G7 정상회의,한·미미사일지침 개선 등 대통령의 외교안보 행보로 지지율은 반등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률도 상승하고 비호감 대선 때문에 문 대통령은 30%중반~40%초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지속했다.

그러자 ‘정치적 거리’를 두며 탈당하던 관행과는 달리 ‘문통의 계승자’임을 여당 후보들이 자임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 수뇌부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30% 중반 박스권에 이재명이 갇혀버린 게 계기였다. 대장동 의혹의 늪에 빠진 탓인데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정권을 들이받으며 위기 탈출과 이재명 후보 보호를 시도했다. 대깨문의 반발을 의식한 이 후보는 ‘정책 차별화’만 하고 문 대통령을 직접 치는 건 역할 분담하듯 송영길에게 맡겼다.

퇴임을 4개월도 안 남긴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40%초~47%의 견고한 지지율을 기록 중인 문 대통령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문 대통령은 ‘마이티 덕(Might Duck-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어디선가 문통의 레임덕을 재촉하는 신호탄은 어김없이 쏘아 올라졌다.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인 조해주의 임기를 꼼수로 연장하려 획책한 게 화근이었다. 조해주는 문재인 대선 캠프의 특보 출신이다. 3·9 대선-6·1 지방선거 승리를 노린 무리수가 화를 불렀다.

선관위 60년 사상 전무후무할 꼼수 임기연장에 중앙선관위 전체 직원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결국 중동 순방 중이던 문 대통령이 고집을 꺾고 반려했던 조해주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었다.

‘선관위의 반란’은 문 대통령의 레임덕 시작을 알리는 그믐밤의 봉홧불이나 마찬가지다. 선관위 파동을 지켜본 공직 사회에서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들이 감지된다. 기획재정부나 교육부, 국방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등에서도 청와대의 과거 무리한 지시에 반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선관위 사태는 숨을 죽인 채 눈알만 굴리던 복지안동 공무원들을 자극하는 결정적인 계기다.

물밑에서 웅성웅성하는 이런 움직임들이 곧 정부 부처 여러 곳에서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은 필연이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던 공직자 처지에서 역지사지해보자. ‘끈 떨어진 갓’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 공무원은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람에게 줄 선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커지면 미리 잘 보이려고 야당의 차기 주자에게 달라붙기 마련이다.

‘영혼없는 관료’들이 야당 후보에게 줄을 서는 순간이 오면 ‘권력 누수’는 가속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라는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지지율이 4%로 떨어져 ‘데드덕(Dead Duck)’ 신세가 됐다. 임기를 거의 1년 앞두고 탄핵으로 보수의 손에 쫓겨난 거다.

그로 인해 ‘보수의 파탄’과 몰락은 시작됐다. 정치적 대참사다. 87년 체제로 들어선 정권들은 하나같이 중대한 실책을 숨기려고 범죄 수준의 무리수를 두기 일쑤였다. 그래서 양김인 YS와 DJ를 제외하곤 퇴임 후 ‘잊힌 존재’로 편안하게 살다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공직 사회의 이반이 시작되면 권력자는 견딜 수 없고, 바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인사나 정책 수행을 공직 사회에서 걸고넘어지는 최악의 상황들이 벌어지는 게 바로 레임덕이다.

야당이야 으레 정부를 공격하는 법이다. 여당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건 레임덕의 징후 중 하나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건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나 하위 공직자들까지 ‘영혼을 되찾아’ 들고 일어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레임덕은 모든 권력자에게 닥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부동의 진리를 무시하고 권력을 계속 쥐어보려 발버둥을 치다 비참한 최후를 맞곤 한다. 문 대통령은 선관위를 손에 쥐고 장난을 치려 한 자를 발본색원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으면, 공직 사회에 퍼질 ‘레임덕 도미노’를 막지 못할 거라고 본다. 그러려면 대선을 어떻게 해보려는 엉뚱한 생각일랑 버리고 공정한 관리자요 심판이 되려고 노력해라!

법무부와 행자부 장관부터 중립적인 인사들로 바꿔주는 게 제일 먼저 해야할 과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 대통령의 집착, 그것부터 버려야 잊혀져 텃밭도 가꾸고 좋아하는 등산도 가끔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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