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최영훈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미궁으로 빠진 틈새를 이재명 후보가 파고든다. 국민의힘도 후보 간 담판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안 후보는 "철수 없다"며 선을 긋고 날선 반응이다. 그는 "단일화를 빌미로 표를 빼가려 하지 말라"면서 양쪽 모두에 발끈하고 있다.

이 후보의 안 후보를 향한 구애는 일종의 페이크 모션(Fake motion)일 거다. 안 후보를 꼬시면 최선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안 후보를 묶어 尹·安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속셈이다.

안 후보의 빛바랜 브랜드인 ‘새 정치’까지 소환하며 정권교체를 넘어선 정치교체까지 이 후보는 역설한다. "정치교체, 시대교체 이런 건 제가 평소에 말씀드리는 것들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KBS라디오)

안 후보의 후보 단일화 결렬 선언은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를 흔들진 못할 것이다. 새로운 소비자를 겨냥한 마케팅에 빗대 현재 스코어는 ‘석열의 성공-재명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윤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신 소비자’ 집단에 강한 소구력을 가진 선거전략이 먹힌 결과다. 반대로 이 후보의 고전 이유는 ‘전통 고객’만 바라보면서 혁신을 외면한 탓이라는 뼈아픈 진단이다.

여태껏 정치사에서 단일화는 지지율이 앞선 후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상례였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DJ)이 김종필(JP)에게 그랬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거꾸로 지지율이 4분의1 수준인 안 후보가 윤 후보에게 단일화를 먼저 기습 제안해 의표를 찔렀다.

혹자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까다로운 일에 윤 후보가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단일화는 입 밖에 꺼내긴 쉬울는지 몰라도 공을 들여 양측 입장을 조율해 성사시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정치 9단 DJ마저 JP를 낚은 뒤 화룡점정격의 박태준(TJ)까지 끼워넣는 데 자그마치 4년 걸렸다. 아니, JP에 앞서 DJ 측은 민정당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포항제철 창립자 TJ에게 먼저 눈독을 들였다. DJ를 대리한 언론인과 TJ 비서실장 조용경이 물밑에서 둘의 결합을 위해 뜸을 들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TJ의 DJ 지지까지 막판에 끌어내면서 ‘DJP 연대’는 순풍에 돛을 단 듯 DJ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DJ JP TJ 정도의 고수간 협상인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정치 초년생 윤석열, 10년 짬밥에도 정치를 잘 모르는 안철수 둘이 ‘철석연대’ 성사를 잘 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지구가 돌아가듯 후보 간 담판을 통한 막판 단일화 가능성만은 남아 있다.

총명한 유권자는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보인 안철수의 기여를 분명히 기억한다. 총선 때 안철수는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는 무공천 결정의 소신을 지킨 바 있다.

안 후보는 4·7 서울시장 재보선 때도 선거연대를 하고 패배 후 선거를 성심껏 돕는 선한 단일화에 공을 세웠다.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도 약속했다. 안철수는 나름 정권교체에 순방향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러다가 지금 안철수가 이재명과 역단일화를 추진하거나 연대한다면 ‘자기부정’이요 ‘갈짓자’ 행보다.

안철수가 이재명에게 시선을 돌리기 힘든 이유다. 그런 판국에 눈길을 여당 쪽에 돌려본들 효과도 미미하다. 반면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해 아마 안철수에겐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질 게 그믐밤에 불을 보듯 환하다.

여권에선 이재명-안철수-김동연의 ‘3각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재명이 중대선거구 추진 공약까지 내걸어 안철수, 김동연에 심상정까지 연대의 포석을 깔고 공을 들인다. 송영길 등은 ‘대통령 빼고 다 나누겠다’고 안철수 등에게 유혹의 꼬리를 친다.

그래도 나는 윤석열과 안철수가 후보 간 극적 담판으로 철석연대에 성공하는 감동 드라마를 쓸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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