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웅
전경웅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만나 11개 분야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했다. 11개 분야에는 정무·군사 정례회의 및 훈련 참여, 신기술·사이버 방위·대테러 등에서 협력한다고 돼 있다. 특히 대테러 분야는 협의체 설치, 나토 대테러 훈련 및 실무그룹 활동에 우리나라의 참여를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은 좋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는 보다 강력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안보전문가들의 말이다. 특히 이번 ITPP에는 한국과 나토 간 대테러 협력 강화가 포함돼 있는데, 대테러 분야에 국한할 게 아니라 ‘정보 분야 협력’을 시도하는 게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보 분야 협력을 강화하면 대테러 협력도 자연스럽게 강화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나토 주요 회원국과 이미 대테러 협의체 ‘킬로와트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당시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대표단을 학살한 뒤 이스라엘의 강력한 요청으로 만들어진 정보기관 간 대테러 협의체로, 처음에는 미국,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남아공이 참여했다.

현재는 미국 주요 정보기관 고위 간부를 중심으로 영국·호주·뉴질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이스라엘 등 15개국 정보기관장과 첩보부대장, 국가안보보좌관이 연 4회 회의를 열어 국제테러조직 동향을 파악하고 공동 대응책을 수립한다. 필요하다면 특수부대를 활용해 ‘비공식 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 미국의 유명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가 자신의 소설에서 묘사한 다국적 대테러 조직 ‘레이보우식스’가 바로 ‘킬로와트 그룹’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이들의 협력은 2001년 9·11 테러 후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9·11 테러 이후 서방 정보기관은 기존의 ‘대테러’나 ‘대간첩(방첩)’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반테러’와 ‘반간첩’을 지향하고 있다. 테러조직이나 적 간첩이 행동을 해야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행동 조짐만 보여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즉 목표를 제거했다. 국제법으로 금지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상관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미국과 나토, 이스라엘 등이 킬로와트 그룹을 통해 뜻을 나누고 공동 대응을 한 결과 알카에다의 국제 네트워크는 사실상 와해됐고, IS는 이제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에서만 준동하고 있다. 이랬던 킬로와트 그룹은 이제 ‘테러 조직’이 아니라 ‘전체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간첩과 테러에 대해 킬로와트 그룹 회원국과 같은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해야만 대응에 나섰다. 즉 9·11 테러 이후 서방 국가들의 대응 전략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처럼 공세적으로 바뀌었음에도 우리 정부는 20세기 식 대응을 하고 있다. 그 원인이 좌파 정권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안보전문가는 거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간 좌파 정권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국내적으로는 국회 의석 때문에 별다른 진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먼저 해외에서 진전을 보는 것은 어떨까. 윤 대통령이 나토정상회의에서 ‘국제안보협력’에 대한 성과를 얻어온다면 국민들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 동안 좌파 세력이 국제 안보 협력을 망쳤다는 데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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