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필자가 고향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기상예보에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면 압록강 상류 지역은 영하 30도쯤 될 것이라 짐작해 보며, 누가 얼어 죽지나 않는지 걱정한다. 북에서 살 땐 가을 단풍만 보아도 다가오는 겨울이 두려웠다. 땔나무와 석탄은 어디서 장만할지 한숨만 나왔었다.

지금의 남쪽 생활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강추위에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호강스러운지 모르겠다. 아까운 장작을 하나 둘 세어가며 떨리는 손으로 아궁이에 넣던 지난날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아내는 고급 전기매트를 사왔다.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등을 따뜻이 지져대고 싶어 산 것이다. 그러는 아내에게 옛날 생각을 다 잊은 게 아닌가고 나무랐다.

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탈북민들은 잘 안다. 북에 살 때 전압이 너무 낮아 집집마다 가정용 변압기를 놓고 써야 했다. 마치 경쟁이나 하듯 서로 더 용량이 큰 변압기를 구입했다. 변압기는 용량이 클수록 값이 비싸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변압기를 놓을 형편이 안 되는 집은 전구에 뻘건 실줄만 보이는 정도였다.

전기히터나 전기밥솥을 몰래 쓰는 사람이 많아 수시로 ‘전기검열대’가 도적고양이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다. 땔나무나 석탄은 돈이 들지만 전기는 국가 것이므로 들키지만 않으면 공짜다. 집집에 전력계량기를 달아놓기도 했지만, 돌아가지 못하게 눈금판 위에 강한 자석을 붙여놨다가 발각돼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생할은 전기를 마음대로 쓴다. 가정용 변압기도 필요 없다. 전기밥솥·히터·냉장고·세탁기·전자레인지·텔레비전·냉풍기·온풍기·공기청정기 등 별의별 가전제품들을 다 갖추고 살자니 우리 가족이 쓰는 전기만 해도 많은 양이다.

요즘 전기장판 사용으로 전기를 많이 썼는데도 이달 요금이 6만5000원밖에 안 나왔다. 음식을 만들 때도 가스가 비용이 적게 들지만 전기가 더 편해 전자레인지를 자주 쓴다. 요리할 때 사용한 한 달 가스요금은 고작 4000원 안팎이다. 밖에서 추위에 덜덜 떨 일도 별로 없다. 직장에도 난방이 잘 되어 있고 학교·병원·극장·도서관·교통수단 등 어디나 가스와 전기로 난방을 한다.

시골에는 저절로 죽어 썩어가는 잡관목이 많은데도 땔감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나무들을 전부 모아 북에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한에 살아 보니 자연에는 겨울이 있어도 생활에는 겨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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