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남한에 온 지 언젠데, 필자는 아직 화장품 이름을 잘 모른다. 아직도 스킨과 로션을 헷갈릴 정도다. 아는 건 크림·분·연지·향수·눈썹연필 정도인데, 북한에서 쓰는 말이다. 남자용·여자용도 못 가린다. 가격도 놀랍다. 몇만 원대가 있는가 하면 백만 원도 넘는 것이 있다.

필자가 여자였다면 달랐을 수 있겠다. 사람은 원래 관심이 절실한 쪽을 먼저 배우기 마련이다. 필자보다 뒤늦게 남한에 온 아내는 화장품 이름을 대부분 아는 것 같다. 북에서는 아내가 화장품 욕심을 내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아내가 화장을 옅게 하고 웬만하면 하지 않고 지낸 것은 살림살이를 걱정해서였다. 지금 와 생각하면 북한 여성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여자로 태어나 좋은 화장품을 쓰고 싶지 않겠나.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유가 없었을 뿐. 그런데도 필자는 "당신은 원래 얼굴이 예뻐. 화장 따윈 대충 해도 돼" 하고 멍청한 소리를 했었다. 그 말에 대꾸는 안 했어도 속으론 "무심하고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라고 했겠지.

남한에 와 살며 가고 오는 여성들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피부가 말갛고 예쁘다. 지하철에서 백인인 외국 여성과 나란히 앉은 한국 여성의 얼굴을 비교해 보면 유색인종인 한국인이 더 백인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북한 여성들보다 영양상태가 양호해 피부가 좋아진 면도 있겠지만, 화장품이 그만큼 따라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여성이 외모에 신경 쓰는 정도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어떤 여성은 화장하느라 쓰는 시간이 몇 시간 걸린단다. 먼저 기초화장이라는 것을 하고, 그 위에다 무슨 화장을 또 하고 또 하고 한다는데, 하여간 단계가 가지가지 복잡하단다. 북한 같으면 일은 언제하고, 굶어 죽기 한창이라는 소릴 듣겠다.

얼굴 화장뿐 아니다. 손톱·발톱에 색감을 칠하고 귀걸이·목걸이·반지 등으로 장식하고 다닌다. 가방은 또 어떻고. 명품 가방이 수백만 원 심지어 수천만 원 되는 것도 있다. 일부러 백화점 명품매장에 가봤다. 무엇을 담는 용도로 쓰이는 게 가방인데 그렇게 고가인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돈이면 자동차도 사겠다. 비닐봉지에도 물건은 담을 수 있건만. 가방 이름도 한 가지만 기억난다. 루이XX라 했던가. 그걸 들고 다니면 무슨 이득이 생기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명품 알아볼 줄 아는 사람들 눈엔 멋져 보일 테니 그 시선을 즐기나보다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한국은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다. 그런데도 어떤 나라들과 비교하며 아직 한국이 멀었다는 얘기가 간혹 들린다. 어느 정도면 여성에게 천국일까. 필자의 부족한 상상력으론 가늠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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