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북한은 학교에서 남한 근대사를 적화통일 교육 차원에서 가르친다. 남한이 미국과 일본의 2중 식민지이며 정권은 아떤 독자성도 가지지 못한 식민지 총독부나 같다고 한다. 민족의 정통성이 평양 정권에 있다는 인식을 주입하려는 의도다.

4·19와 5·18도 이런 차원에서 설명한다. 용어도 남한과 다르게 사용한다. 4·19를 ‘4·19인민봉기’, 5·18은 ‘광주인민봉기’라고 한다.

북한 <조선대백과사전>은 4·19에 대해 "미제 침략과 전쟁정책의 하수인인 이승만 괴뢰정권을 타도한 것은 남조선 인민들의 반미구국투쟁에서 이룩한 거대한 첫 승리이며 괴뢰정권 붕괴는 미제의 식민지 통치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적고 있다.

북한은 4·19의 배경이 미국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남한 민중의 분노와 미국 지령을 받은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라고 가르친다. 또 4·19가 이승만 정부 타도에 그치지 않고 미군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졌는데, 그래서 나온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였다고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김일성을 동경해 마지않던 남녘의 민심을 보여줬다고 한다. 또 4·19가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긴 했으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한 혁명적 당의 영도가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실패했다고 한다.

5·18 역시 미국의 식민지 통치와 군부독재에 무장봉기로 맞선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사망자 수도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십만 명이나 된다고 했는데 남한에 와보니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었다.

5·18 실패 원인 역시 4·19 실패 원인과 비슷하게 설명한다. 혁명적 당의 올바른 영도가 없었고 반미를 기본 목표로 삼지 않았으며, "폭동에서 방어는 곧 죽음이라는 혁명의 전략 전술적 원리"를 몰라 도시 방어에만 매달려 봉기를 전국에 확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기를 통해 남조선 인민들은 군부독재 세력에 광주학살을 지시한 미국의 정체를 깨닫게 됐으며 비로소 반미구국항전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가르친다.

북한의 이같은 교육은 4·19와 5·18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주4.3사건, 6월항쟁, 부마항쟁 등 모든 사건과 운동을 ‘반미구국투쟁’과 연결한다.

이쯤 되면 북한이 남한 근대사를 가르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남한사회가 반미시위 등으로 혼란해지면 왜 그렇게 기뻐하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든지 적화통일을 포기하리라는 기대를 애초에 가져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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