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필자가 북한에서 살던 도시에도 동물원이 있다. 어려서는 자주 갔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시간에 쫓겨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동물원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모처럼 동물원을 한 번 찾아가게 됐다. 하지만 괜히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도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안 했다.

동물원은 입장료도 받지 않고 있었다. 원래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까닭은 동물원을 돌아보고 알았다. 놀랍게도 독수리가 있던 칸에 닭이 있고 멧돼지 방에는 집돼지가 있었다. 사슴이 있던 곳은 염소들 차지였다. 동물원이 통째로 직원들 가축 목장이 된 꼴이었다. 야생동물은 사료 부담이 덜한 종뿐이었다. 육식동물은 여우뿐이었다. 사자·호랑이 같은 맹수는 먹일 것이 없어 평양 동물원에 보내 없었다. 그러니 동물원 찾는 사람도 없고 입장료 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동물원에 당나귀가 새로 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당나귀를 보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해 중앙에서 관상용으로 한 마리 선물을 보냈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는데 당나귀 얼굴도 보지 못했다. 동물원 측이 당나귀를 끌고 나가 운송수단으로 부리는 중이었다. 관람용 당나귀를 달구지를 끌게 한다니 기가 막혔다.

어느 날 거리에서 그 당나귀를 봤다. 한여름 뙤약볕에 짐을 싣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가고 있었다. 동물원 직원은 당나귀가 꾀를 부린다고 회초리로 때렸다. 행인들은 "평양에 있었으면 안 해도 될 고생을 무슨 죄를 짓고 추방돼 그 고생이냐"며 웃었다.

이 사실을 도당 책임 비서가 알게 됐다. 무엄하게 누가 보낸 선물인데 부려 먹어? 당장 회의를 열고 동물원 원장을 꾸짖었다. 그런데 원장은 오히려 비위좋게 트럭 한 대 주면 안 그러겠다고 맞섰다. 운송수단이 하나도 없는데 어떡하는가, 동물원만 잘못인가, 자동차를 주지 않는 위의 책임은 없는가 따졌다. 말문이 막힌 책임 비서는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구경시키라는 당나귀를 일 시키면 되나. 그 당나귀는 관람용"이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원장은 "어차피 동물원 구경 오는 사람도 없다. 구경할 동물이 없다. 육식동물도 여우밖에 없다. 여우 먹이라고 조금 나오는 고기도 직원들이 훔쳐 먹는지, 영양실조에 걸려 걷지도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당나귀를 이동 관람시키기로 했다. 거리에 나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다 보니까 관람 문제도 해결되고, 동물원에 필요한 물자도 나르고, 얼마나 좋은가.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책임비서는 할 말을 잃었고 회의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 후 당나귀는 계속 짐을 끌었고 나중에 앓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금도 세월을 잘못 만난 그 불쌍한 당나귀를 떠올리면 생각이 착잡해지며 쓴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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