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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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이 지난 3년간 고위험·고난도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을 팔아 약 7000억원의 수수료 이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상당수 ELS 가입자의 경우 투자 수익은 커녕 원금 회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가 집중된 홍콩H지수 ELS다. 지난 2일 현재 홍콩H지수는 5219로 2021년 당시 고점인 1만2000선의 절반을 밑돌며 대규모 손실이 속속 확정되고 있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투자자들의 민원이 3000여건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달 안에 배상 기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파생상품 투자 피해 사례에 비춰볼 때 금융당국이 배상 기준안을 마련하면 이를 가이드라인 삼아 각 금융사가 자율 배상안을 마련, 소비자 배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LS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은 배상액이 손실액 대비 어느 정도까지 인정될지 여부다. 과거 비슷한 구조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 때는 배상 비율이 최고 80%까지 인정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2021년 3월 도입된 금융소비자보호법 때문에 역설적으로 배상 비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2021년부터 2023년 3분기까지 ELS 판매를 통해 얻은 수수료 이익은 모두 6815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주가지수 등의 흐름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품으로 은행들은 증권사가 설계·발행한 ELS를 가져와 주가연계신탁(ELT)이나 주가연계펀드(ELF) 형태로 팔아왔다.

은행 몫의 수수료는 ELT의 경우 판매액의 1%, ELF는 대면과 비대면 판매액의 각각 0.9%, 0.7% 수준이다. 은행들은 3년간 주로 ELT 판매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수천억원에 이르는 은행들의 수수료 이익과는 대조적으로 ELS 가입자의 손실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상품 가운데 올들어 지난 2일까지 만기가 돌아온 투자 원금은 모두 7061억원이다. 하지만 고객이 돌려받은 돈은 3313억원뿐으로 평균 손실률이 53.1%에 달한다. 홍콩H지수가 5000선 아래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손실률은 58.2%로 60%에 육박하고 있다. 반토막도 못 건진 셈이다.

더구나 올해 15조4000억원,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홍콩H지수 ELS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홍콩H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현재의 흐름을 유지할 경우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주요 은행은 지난해 11월 홍콩H지수 ELS 판매를 중단했고, 지난주에는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이 기초자산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ELS를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이미 지난해 10월 초부터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ELS를 팔지 않고 있다.

하지만 ELS 판매의 잠정 중단 상태가 이어져 은행권에서 ELS가 완전히 사라질 것인지 여부는 단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은행 입장에서 ELS의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LS 수수료 이익은 은행 비(非)이자 이익의 6% 수준으로 가장 비중이 큰 외환 수수료보다는 작지만 퇴직연금 자산관리 수수료와 거의 같은 규모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8일부터 은행 5곳과 증권사 7곳을 대상으로 ELS 불완전판매 관련 현장검사와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배상 기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가장 성격이 비슷한 것은 독일 국채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다. 지난 2019년 2870명의 투자자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서 4024억원의 투자금을 날렸다. 당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DLF 관련 민원을 유형화해 손실액 대비 40~80%의 손실 배상 비율을 정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DLF 사태 이후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 때문에 배상 비율이 낮아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발효를 기점으로 은행들이 녹취를 강화한 것은 물론 필수적인 내용을 인공지능(AI) 기계음을 통해 읽어주는 등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만큼 금융사들이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항변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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