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김정은은 지난 연말부터 줄곧 종전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른 언급을 하고 있어 국내외에서 한반도 전쟁설이 확산되고 있다. 김정은은 조국통일 3대헌장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 ‘전쟁중인 교전국’이라고 규정하면서 남북교류·협력을 담당했던 조직과 단체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전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김정은의 호전적 수사, 통일 선언 포기, 북러 밀착 및 격화하는 미중간 지정학적 긴장 상황 등을 근거로, 미국의 대화파 학자나 전직 고위 관료 및 언론이 한반도 전쟁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분석관과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김정은, 김일성처럼 전쟁 결심한 듯’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해 전쟁설을 촉발시켰다. 이어 뉴욕타임스(NYT)가 "김정은의 발언 수위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북한이 향후 몇 달 내 한국에 대해 치명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더욱 증폭됐다. 이재명 대표도 "혹시 전쟁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 칼럼에서는 김정은의 전쟁 도발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구심적 요인과 원심적 요인으로 나눠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구심적 요인으로 ①무결성 최고지도자라는 김정은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②핵무장 완성의 자신감과 불안한 핵무기 지휘·통제 시스템, ③북한에 유리한 국제정치 역학구도 재조정 등을 들 수 있다. 원심적 요인으로는 ①내부의 복잡한 경제·사회 문제, ②핵전쟁 개시=북한 체제 종말, ③한미동맹 강화 및 한미일 협력체제의 공고화 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먼저 구심적 요인을 살펴보자. 우선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 10대원칙’ 5조의 무조건성의 원칙에 의거해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무한한 헌신과 희생정신을 발휘해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정은이 전쟁을 준비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북한의 전 조직은 전쟁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전술핵으로 한국과 주변국의 전술적 타격, ICBM으로 미국에 대한 전략적 타격, SLBM으로 제2격 보복 수행 등 전술핵·ICBM·SLBM의 북한판 핵3축 전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거기다 이런 핵무기 투발 수단으로 다종의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실질적인 핵보유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은 이에 자신감을 갖고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핵전쟁 결심과 핵무기 발사 권한을 김정은 1인한테 위임하고 있어 핵무기 지휘·통제체계 상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현 냉전적 국제질서가 김정은한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무슨 나쁜 짓을 해도 제재를 받지 않을 정도로 유엔 안보리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김정은은 국제혁명 역량이 만조기에 찼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 원심적 요인은 어떤가. 첫째, 김정은도 인정했듯이 북한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는 "지방경제가 초보적인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한심한 상태에 있다"며 경제 붕괴 상황을 인정했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무너진 지 오래됐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들어 북한에서 다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500만 대 이상 보급되면서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에 심취하는 등 한국풍을 따라하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통치 이념 훼손 등 체제 균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둘째, 지금의 행태가 북한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전에도 보였던 행동 패턴이라는 점이다. 2013년 한미가 ‘맞춤형 대북 억제전략’ 을 내놓자, 핵무기를 동원한 ‘통일성전’을 다짐했고, 2014년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백악관과 펜타곤, 태평양의 미군기지와 함께 남한 공격을 위협한 바 있다. 2015~2017년에도 반복됐던 사례들이다.

셋째, 김정은은 핵전쟁을 일으키면 한반도는 공멸이고, 북한 체제도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핵무력을 동원한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위장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북핵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그런 과정에서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하는 유리한 협상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고 있다. 한미간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해 논의할 정도로 대북 확장억지력이 강화되고 있다. 거기다 전례없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도 공고화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모토로 북한이 도발하면 수십 배 강력하게 응징·보복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국방장관이 전쟁 수뇌부에 대한 ‘참수’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김정은 지시의 무조건 복종 등 북한체제 특성, 김정은의 핵무장 완성에 대한 자신감,핵전쟁 개시 권한 1인 보유 체계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인이다. 그러나 경제력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점, 핵전쟁은 바로 북한체제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점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핵을 포함한 전면전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의 말폭탄은 미국의 대선을 겨냥한 선전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정은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과 긴장을 고조시킬 새롭고 참신한 방법을 찾고 있다.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공격 등과 같은 대형 국지적 도발이나 생화학 무기를 탑재한 드론 공격 등,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도발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당국은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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