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의 모범국가로 칭송을 받아왔다. 우리 국민도 선진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데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정당의 공직 후보 선출 방식은 외국인들이 알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수당 보스 한 사람이 마음대로 선거제도를 정해도 되고, 보스가 자신에게 아부하고 법정 변호로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사천(私薦)해도, 아무런 법적 강제를 받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말이 그저 나오는 게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을 아무 지역구나 갖다 꽂고, 시스템 공천한다면서 지역구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선발에 적용되는 기준과 잣대가 들쭉날쭉이다. 이런 공천시스템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의원들은 보스의 눈에 들어야 다음 공천도 보장되기 때문에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정당 보스의 졸개’로 전락하게 된다.

또 지역 출마가 어려운 각 직능의 전문가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만든 비례대표 제도는 본래 취지와 전혀 무관하게 마구잡이로 운영되고 있다. 민주당이 ‘검찰 독재 정권 조기 종식 및 반윤석열’세력들을 규합한다면서, 자유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반(反)대한민국 세력 제도권 진입의 숙주 노릇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대한민국 전복 기도 계획이 발각되어 주모자가 구속되고 정당이 해체됐던 세력이 다시 국회에 진입하도록 돕고 있다.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거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회 진출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지금 야권의 비례 위성정당은 종북 활동가의 해방구요, 범죄 혐의자들의 도피처로 전락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 행사를 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정당 보스가 자기 입맛대로 공천하는 제도는 반민주적이며 반상식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잘 도입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데 정치분야만 유독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직 후보 선출 방식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공천이 아닌 사천 제도를 폐기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대로 된 공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정치 선진국의 공직자 후보 선출제도를 살펴보자. 우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인 미국은 당에서 후보를 공천하는 대신 당원과 유권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공천을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은 당원과 유권자의 직접투표에 의한 예비선거(primary)를 치른다. 예비선거는 주마다 조금씩 다르나 등록유권자면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과 당원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폐쇄형으로 나뉜다.

영국에서는 인위적 물갈이나 줄세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 보수당은 후보자 선정위원회가 예비후보를 압축하고, 선거구협회 집행위의 면접 등을 거쳐 총회에서 후보를 선출한다. 노동당도 선거구협회 집행위에서 작성한 예비후보 명단을 바탕으로 총무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선출한다. 독일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정하는 상향식 공천을 아예 법으로 명문화해 두고 있다.

그럼 우리의 공직 후보자 선출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본래 취지와 기능을 상실한 비례대표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 인구가 점차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해 지역구 수를 늘리지 말고 250개 정도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공천의 민주성을 제고하고, 중앙당의 공천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미국식 개방형 예비선거(open primary) 제도를 도입해 보자. 단 상향식 공천제 단점인 신인들의 정치 진입 애로를 터주기 위해 의정활동이 부진한 하위 20% 의원들은 재출마 못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 국회사무처와 중앙선관위 합동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공적 감시를 강화하고 평가토록 하자. 독일처럼 당이 상향식 공천을 반드시 실행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할 근거를 만들자.

‘정치만 잘 하면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선진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많은 국민의 꿈이 실현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국가를 만드는 정치개혁에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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