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연속해 큰 표 차이로 경선 레이스에서 승리하며 공화당 후보로 지위를 굳혀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고 있어 트럼프의 재선이 현실화 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귀환 가능성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전 폼페오 국무장관 및 파네타 국방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군사적 억지력을 상실했다. 아시아에서도 이미 억지력을 잃기 직전이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슈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헤리티지 재단 연설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미국 업체들이 떼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공화당은 헛소리를 일삼고 있나? 유럽 없이 중국을 잡을 수 있나?"라며 트럼프의 고립주의 회귀를 정면 반박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의회 폭동 사태 등 2020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시도를 비롯해 91개 혐의로 4차례 형사 기소되어 있다. 이런 사법리스크에도 강력한 지지세를 유지하면서 경선에서 연승하고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미국의 바닥 민심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백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유권자층의 정치적 재편이 일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전 지구적 산업 재배치에 따른 기득권 박탈과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변화가 한몫 했다. 미국 백인 남성과 남부 복음주의 기독교 벨트 사람들은 똑똑한 제3세계 이민자와 중국이 미국의 권력과 부를 빼앗아갔다고 분노한다. 현재 미국의 유명 IT 및 플랫폼 기업 CEO의 상당수를 유색인종이 차지하고 있어 백인 엘리트들도 능력주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불만이 높다. 트럼프는 불안하고 원자화된 다수 노동자의 분노, 또 전통적으로 미국인 가치를 담보한다고 믿었던 백인 남성들의 불편해진 심기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이민자 입국 제한 및 남부 국경 장벽 설치 등 이들의 분노를 정책으로 현실화하면서 강한 지지를 견인하고 있다. 즉 트럼프는 민심에 영합해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과거의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 외교는 국제주의보다 고립주의 역사가 훨씬 길다. 미국은 건국 이후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1차세계 대전 때 잠시 참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까지 고립주의 외교로 일관해 왔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미국은 외국과 어떤 동맹을 맺지 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치가 체코·폴란드·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까지 점령했을 때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의 참전 간청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주만 공습을 받고 비로소 움직였다. 2차세계 대전 이후에는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하면서 줄곧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외교가 지속됐으나 이제 미국의 민심이 고립주의 외교를 원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세력은 유권자층의 바닥 민심 변화를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고립주의가 일시적이 아니라 보편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은 고립주의 외교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권력은 공백 상태를 싫어한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미국과 각을 세우며 경쟁하던 국가들이 파고들 것이다.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중동에서는 이란이 미국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이들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 세계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인권의 가치는 유린당하게 될 것이다. 국제정세는 더욱 불안해지고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취임하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트럼프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상정한 610억 달러 상당의 대(對)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차단했다. 미국과 서방의 전비 지원이 끊어지면 러시아가 점령지역을 차지한 채 휴전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푸틴에게 부(不)정의의 승리를 안겨주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나토가 방위비 증액을 하지 않으면 내가 러시아에 침공을 권할 것"이라고도 했다. 푸틴은 머지않은 장래에 나토가 전략적으로 방어하기 힘든 발트국가를 공격할 것이다. 미국이 빠진 나토는 대응이 어려울 것이다. 나토의 집단 방어력이 약화되면서 유럽은 러시아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는 시진핑과 김정은의 통일 유혹을 크게 자극할 것이다. 미국의 대만 수호 의지가 약화되는 가운데 공동부유 정책 등으로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 시진핑은 대만 침공으로 탈출구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만 보호를 위해 중국과의 전쟁을 불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김정은도 경제·사회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미국의 대(對) 한반도 확장억지력 약화가 감지되면 오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 지역은 중국의 영향권으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동에서도 발을 뺄 것이다. 그러면 이란은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동지역의 패권을 강하게 추구할 것이다. 기존의 시아벨트를 강화하면서 이슬람공화국혁명 수출을 확대해 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동지역 왕정 8개국과 이란을 필두로 하는 시아벨트가 대립하면서 중동 정세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국제사회는 리더십 공백에 직면하게 되고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이런 난세에 우리는 주권을 지키고 국익을 수호하는 일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정부는 트럼프 당선을 상정하고 이에 대응할 팀을 꾸려 커넥션을 엮어내고,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빈틈없는 대응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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