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연상모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베트남을 방문, 베트남과 ‘남중국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이 협정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새로운 공식 ‘표준지도’를 발표해 남중국해의 약 90%를 중국 영해로 명시했다. 그러자 관련국가들이 강력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번에 필리핀과 베트남이 협정을 체결한 것은 이같은 새로운 대응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중국의 무리한 주장에서 기인한다. 당초 중국은 남중국해에 9개의 선(9단선)을 긋고 그 선 내의 수역에 대해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초 이래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더욱 공세적으로 나갔다.

그러자 필리핀이 2013년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2016년 판결을 통해 중국이 내세운 소위 ‘9단선’의 존재를 부정해 중국에 완패를 안겼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판결을 무시하고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8월 새로운 공식 ‘표준지도’를 발표한 것은 그 절정이었다.

중국 정부의 새로운 표준지도 발표에 대해 관련국가들은 과거와 달리 강력하게 반발했다. 필리핀 대통령은 9월 "남중국해에서 주권에 대한 도전에 우리는 맞설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필리핀은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 4곳을 지난해 1월에 추가로 제공했으며 남중국해에서 미군과 공동 순찰을 실시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해 9월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했다. 9월에 개최된 아세안·중국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중국 총리에게 "국제법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필리핀·베트남 등이 이처럼 중국에 강하게 대응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이다. 이들 국가는 중국이 대국임을 감안, 그동안 중국의 공세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 국가들이 중국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남중국해 문제 관련 중국과의 협상에서 오는 무력감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기존의 해양패권을 지키기 위해 남중국해를 군사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해부터 필리핀·베트남 등이 강력하게 대응함에 따라 중국은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다. 향후 필리핀과 베트남은 미국·일본·호주 등과 해상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들과도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국가들의 반발을 감안해 중국은 일련의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2월 급히 베트남을 방문, ‘미래 공동체’로 관계를 재정립했다. 또 중국은 최근 필리핀 기업이 남중국해의 필리핀 수역에서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것을 묵인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전술적인 대응이지 남중국해에 대한 공세적 자세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중국해는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필리핀 등 여러 동남아국가들과 연해 있는 바다로, 남중국해가 중국의 해안선과 만나는 부분은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남중국해의 대부분이 중국 영해라는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중국과 아세안은 떨어질 수 없는 좋은 이웃이자 동반자로서, 양측의 운명공동체를 더욱 긴밀하게 구축하자"는 중국의 수사가 실제 행동과 일치할지 여부는 중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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