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국
양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파벌과 하극상 등 ‘군기 문란’으로 도마에 올랐다. 무엇보다 미래 축구 꿈나무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안쓰럽다. 스포츠나 대중예술의 스타들은 동심을 지켜줘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3대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는 1983년 비행기에서 한 아이에게 사인을 해줬다. 그런데 적힌 이름이 제임스 본드가 아니었다. 아이는 울상이 됐다. 그는 꼬마에게 귓속말로 "난 제임스 본드야. 하지만 그렇게 쓰면 블로펠드(007시리즈의 악당)가 우릴 찾을 수도 있어"라고 달랬다.

꼬마는 어느덧 서른 살의 사진작가가 됐고,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된 로저를 촬영하게 됐다. 오래전 비행기에서 만났다며 인사를 건네자 로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후 로저는 주위를 살피며 어른이 된 꼬마의 귀에 "당연히 자네를 기억하지. 여기도 블로펠드의 첩자가 있을 수 있으니 모른 체하자구"라고 속삭였다. 두 번이나 동심을 지켜준 스타에게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아이들의 눈’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이다. 임원희가 주연한 B급 코믹영화 ‘다찌마와 리’(2000)에서 주인공은 악당들을 응징하기 전 "벌건 대낮에 아이들이 봐서는 안되는…"이라는 대사를 날렸다. 드라마 ‘야인시대’(2002)에서 김두한은 요즘 말로 주취폭력을 일삼던 신마적에게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느냐"고 따졌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의명분 그것이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아이들의 영웅이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어설픈 언론 플레이를 즉각 중단하고, 울며 축구공을 안고 잠든 아이들을 먼저 달래야 한다. 과거 히딩크 감독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 하니, 축구나 국가나 리더를 잘 만나야 한다는 교훈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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