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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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0%로 묶어 9회 연속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데다 가계부채 증가세 역시 꺾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여전히 물가 관리를 강조하며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먼저 금리를 내릴 이유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당초 월가는 미 연준이 이르면 3월 또는 5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고, 올해 최대 6~7차례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았다. 실제 지난 1월 말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 예측치를 보면 미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무려 90%에 달했다.

하지만 미 연준은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하면서 매파적 기조를 드러내 조기 금리 인하설은 힘을 잃게 됐다. 특히 제롬 파월 의장은 "올해 적절한 시점에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지만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물가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해야 비로소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전문가들은 미 연준이 6월께 금리 인하에 나서면 한국은행도 하반기부터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길고 긴 ‘고금리 터널’이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과 같은 3.0%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의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농산물과 외식 등 먹거리 관련 체감물가가 높게 나타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 역시 최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농산물 등 생활물가도 여전히 높다"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아직 금리를 낮출 만큼 물가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진단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유지하다 올들어 지난 1월 2.8%를 기록하면서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한국은행은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국면에서 너무 일찍 통화정책 완화로 돌아섰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무산되는 라스트 마일 리스크를 경계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6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0.3%로 시장 전망치 0.1%를 크게 웃돌았다. 앞서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월 대비 상승률도 0.3%로 시장 예상치 0.2%를 상회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역시 금리 인하를 막는 요인이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은 올들어 지난 1월까지 10개월째 불어나고 있다. 지난 1월의 경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855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4조9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1월 기준으로 지난 2021년 1월 5조원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증가폭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물가보다 강조하지는 않겠지만 경제 규모(GDP)와 비교해 지나치게 큰 가계부채에 큰 우려와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표면적 이유로 물가를 거론한다고 해도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동결 요인으로 가계부채의 무게는 인플레이션과 거의 비슷한 수준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율 리스크도 한국은행이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운 제약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미 연준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 수준인 2.0%포인트로 벌어진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원·달러 환율 불안 등 심각한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렸다가 환율이 급등하며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안해진 적이 있다"며 "미 연준에서 6월께 기준금리를 낮추면 한국은행도 부담 없이 내릴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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