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검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개월 전 간호사들이 대규모 파업을 하던 때 ‘환자들을 위해 의료현장에 돌아와 달라’고 촉구하던 의사들의 글이 재조명되고 있다. 의료공백의 심각성은 7개월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점에서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비판도 쇄도하고 있다.

20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7개월 전 ‘부산대병원 동료분께’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부산대병원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며 전국 병원 중 최대 규모로 파업을 벌일 때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대자보를 통해 간호사들의 복귀를 종용했다. 당시 파업은 간호사들이 주축인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선언했다.

당시 대자보에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함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수많은 환자분들이 수술·시술·항암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신다"며 "우리 병원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희망이다. 하루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진료와 치료를 간절하게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의료현장에서는 의료공백에 의한 공포가 7개월 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상상황임은 마찬가지인 만큼 그 때의 목소리를 냈던 교수협의회가 나서 전공의들 집단행동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들의 희망인 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국민 건강권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7개월 전과 지금이 마찬가지다"며 "그 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다는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의사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며 신속히 환자들에게 돌아와 의료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대병원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공의 236명 중 216명이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이 출근하지 않았다. 내달 1일부터 근무키로 한 신규 인턴 50여명 역시 임용 포기 각서를 썼다.

한편 7개월 전과 파업의 주체가 뒤집힌 현재, 전공의들의 무더기 사직서 탓에 이들의 업무를 일부 떠맡게 된 간호사들이 업무 가중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우려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수술실 간호사로 불리며 의사 역할을 대신하는 PA(진료보조 :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PA 간호사는 수술장 보조·검사시술 보조·검체의뢰·응급상황 시 보조 등 역할을 실제로 하고 있다. 위법과 탈법의 경계선에서 사각지대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전국에서 약 1만 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법에 근거한 ‘진료의 보조’라는 것이 모호해 사실상 의사의 일을 대신해왔던 셈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가 있는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한 결과 △수술 취소와 연기 △응급시술 중단 △수술과 시술건수 축소 △타 병원으로 전원 △입원 연기와 취소 △응급실 내원 환자 축소 △필수검사 미시행 및 연기 △검사 축소 △영상판독 중단 △입원병실 축소 △입원 환자 축소 △외래 신규환자 차단 △예약 차단 △조기퇴원 등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이 업무가 간호사 등 타 직군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며 "실제 여러 병원에서는 진료부가 ‘동의서 및 검사·처치에 대한 업무협조’를 간호부에 요청한 사례가 있고 전공의 업무를 PA가 시행할 것, 드레싱 업무를 각 병동에서 알아서 할 것 등 지침을 시행한 상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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