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복
한영복

과거 필자의 대학시절, 신입생마다 받아드는 공통교과서가 한 권 있었다. 두툼한 책의 표지엔 ‘국민윤리’(國民倫理)라고 큼지막하게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냉전체제 하 소련과 중공, 북한 등 강력한 공산진영과 대치하는 가운데 연일 반정부 시위를 했어도, 당시 대학생들은 국가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만큼은 확고했다. 국민윤리 책에서 배운 것이 뇌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 책은 사라지고 신앙처럼 견고했던 반공의식은 구세대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좌익들이 장악한 사회에서는 윤리의식도 바닥에 떨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입시비리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와중에 창당을 선언했다. 말문이 막힌다. 곽상도 전 의원은 아들이 50억 원을 받은 데 대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여론의 공분을 샀다. 과도한 특혜로 지탄을 받아도 국회의원들은 특권폐지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법을 무시한 법원의 재판지연은 도를 넘었다. 정치인과 법조인들의 도덕성이 흐려질 대로 흐려져 추스르기조차 어렵다.

안보와 체제에 대한 경각심도 바닥이다. 지난 1월 24일 윤미향 의원이 주최한 국회토론회에서 "북한의 전쟁은 정의(正義)의 전쟁"이라거나 "통일전쟁이 일어나 그 전쟁으로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는 등 경악스러운 발언이 쏟아졌다. 북한 김정은이 "핵으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한다"고 공언한 때에 버젓이 국회 회의장에서 그런 발언이 나온 것이다. 북한 핵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자가 그자인 것은 안 봐도 뻔하지만.

도덕성 실종과 함께 역사왜곡이 국민의식을 갉아 먹는 사이, 우리는 친북·종북 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은 공산주의와는 결코 타협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친북·종북 세력이 그들을 친일파·독재자·미제의 앞잡이로 모는 것을 보면서도 구경만 했다. 아니 두려워 제대로 싸울 생각도 못했다. 그 대가로 지금 힘겹게 체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배운 젊은이들은 환각상태에 빠진 듯, 치열한 체제전쟁을 경로당의 놀이쯤으로 여기며 외면해왔다.

4·10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물러설 곳이 없다. 좌익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부터 줄곧 탄핵을 외쳐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경기동부연합과 긴밀한 관계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동부연합은 1980년대 중반 형성된 NL(민족해방파)계열 중 북한 주체사상을 가장 신봉하는 친북 성향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종북으로 해산된 정당의 후신들이 범야권 비례연합을 통해 15석을 차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이긴다면 종북세력의 원내 장악으로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탄핵의 소용돌이가 일 것이다. 그들은 온힘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전쟁에서 이기려면 왜곡된 역사의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건국전쟁’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풀릴 것 같지 않던 역사왜곡의 실타래가 ‘건국전쟁’이 일으킨 문화전쟁에서 옮겨 붙은 불로 실마리가 잡힐 것 같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방관자로만 있을 것 같던 젊은이들이 깨어나고 있다. 체제 도전에 맞서 싸울 깨우친 젊은 투사들을 기꺼이 국회로 보내자.

흐트러진 도덕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해 국민의식을 추슬러야 한다. 국가현실에 대한 자각이 팽팽하게 유지됐더라면 지도층의 만성적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민주라는 허울 속에 국가 정체성이 유린당한 참담한 현실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국민의식을 일깨워 4·10총선 이후 이어질 전쟁에 대비하고 정체성을 이어갈 전열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민윤리교육을 재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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