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복
한영복

대입수능과 모의고사 출제에 참여했던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에 예상문항을 판매하고 거액을 챙긴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거래알선책까지 포함된 조직을 만들었다. 국가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 위반에 앞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기업형태의 조직까지 구성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매우 심각하다. 교육당국의 관리부실도 한몫 했고, 학원 모의고사와 동일한 지문이 수능에 출제된 사건을 평가원 직원들이 문제 삼지 않기로 모의했다니, 한마디로 총체적인 부실이다.

거래된 문항들이 학원에서 다뤄지고 학교의 중간·기말시험에도 출제되면 내신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학원들은 자연히 ‘족집게’로 소문이 난다. 출제교사들은 이런 비리를 저지르며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몰았다. 내신성적조차 학원의 모의시험을 통해 영향을 받는 것은 내신의 취지를 퇴색시킨다. 공교육 정상화에 집중해야 할 교사들이 사교육 문제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피해를 보는 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다.

수능과 관련한 고질적인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매번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미봉책에만 머물러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입시비리에 가담한 교사에 대한 징계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한다지만,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지 않으면 해결은 아예 물 건너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강력히 시사했어도, 이를 뒷받침할 교육당국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우선 수능이라는 하나의 시험에 모든 수험생이 매달리면 대규모의 킬러문항 시장이 형성된다. 이런 여건 하에서는 사교육카르텔이 활개칠 수밖에 없다. 현행 입시제도의 이같은 구조적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면 킬러문항과 관련된 사교육카르텔이 서식할 터전이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대학별 본고사는 사교육시장 자체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입시 비리는 거의가 복잡한 전형방법에서 비롯된다. 지나치게 복잡·다양한 현행 입시제도가 사교육카르텔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한 학교의 학생들의 수능석차와 내신석차를 비교해보면 아마도 수험생들의 석차 변동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수능과 내신은 사실상 같은 것이니 동일한 평가를 두 번 반복하는 셈이다. 내신평가는 없애는 것이 낫다. 내신평가를 없애면 학교별 실력 차이에 기인한 등급평가의 유·불리도 없어지니 공정성도 더 향상된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지난해 사교육비는 27조 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학원 열풍이 잦아들 줄을 모른다. 고등학생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74만 원에 이른다. 평균이 그럴 뿐 출제 경향을 반영한 문제집을 포함, 수강료는 월 수백만 원까지 된다. 이런 입시구조에서는 공교육으로 일류대 진학하기가 어려워진다. 수능·내신·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논술까지, 과도한 학원비에 학부모 시름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고 부모찬스가 일류 명문대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입시가 복잡할수록 사교육은 비대해지고 비리의 여지가 많아진다. 공교육을 통해 성실하게 실력을 쌓은 수험생들이 노력의 대가를 얻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족집게를 좇아 학원을 전전하는 기회주의를 배우게 해선 안 된다. 학우들끼리의 친구관계가 내신경쟁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도 안타깝다.

건전한 대학입시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단순·과감하게 대입전형 방법을 손봐야 한다. 학종도 취지를 잃고 부작용이 심하다. 폐지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논술과 면접은 본고사와 동시에 시행하되 비중을 낮춰 시험의 결과를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단순화할수록 대학입시는 공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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