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복
한영복

옛날 광화문 신문로에는 경기여고 쪽에서 교육회관 쪽으로 건너가는 육교가 있었다. 그 옆을 지나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육교로 태연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밑 차도에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강아지와 위아래서 나란히 건너는 광경을 보곤 웃음이 나왔다. 위아래가 바뀐 것 아닌가?

오래전에 차를 몰고 과천의 이면도로를 주행한 적이 있다. 차도 인적도 없는 새벽 두 시쯤의 적막한 길에서 빨간불에 차를 세우고 신호를 기다렸다. 옆에 앉은 이가 왜 안 가고 서있냐고 묻는데 빨간불이라고 하니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께서 일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일본 사람은 절대 차도에 내려서지 않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이 내려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공중도덕과 질서의식에 대해 말하면서, 패전국이지만 일본이 단기간에 미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잘사는 나라가 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과거엔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도 많았고 그땐 무단횡단쯤이야 별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참 많이 변했다. 경제 발전과 함께 우리의 질서의식도 많이 달라졌다. 어디서든 사람이 모이면 자동으로 줄이 만들어진다. 공중도덕 수준은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무단횡단은 보기 어렵다. 도덕성도 있다. 대중음식점이나 카페 등에 지갑을 놓고 나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 쉽게 찾는 것을 보면 외국인은 모두가 놀란다.

질서는 사회 운영을 위한 약속이며 규범이다. 질서가 잘 유지되면 구성원 상호간 존중과 배려의 정신으로 함께 번영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질서가 없다면 탐욕과 무시, 이기심이 지배원리가 되어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얼마나 질서를 잘 지키느냐 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가르치는 질서의식이 사회의 튼튼한 기반이 된다.

우리사회 시민의식 수준은 많이 향상됐으나, 정치인들만큼은 여전히 바닥권에서 헤매고 있다. 정직한 시민의식이 아니라 특권의식에 젖어있으니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달콤하게 즐기고 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생각은 없고 권력과 금욕, 명예욕을 한꺼번에 취하려다 보니 국회의원직은 그 욕심을 위한 통로다. 그들이야말로 교육으로 질서의식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문화를 겉과 형식을 중시하는 체면문화라고 일컫기도 한다. 깊이 와 닿는 말이다. 사람을 내면보다 외모나 유명세로 판단하는 정도가 심하다. 심지어 식당에서조차 사람을 가리곤 한다. 그런 풍토에서 능력있는 신인보다 권력자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회를 누린다. 선거에서도 유명세가 아니라 공정하게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신인이 좌절하지 않고 정치권에서 스스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1년에 600만 원, 하루에 1만6400원어치의 간식을 먹는다. 그만큼 먹으려면 간식 먹느라 할 일은 뒷전일 것이다. 일가친척 모두가 병원비 무료의 혜택을 받는다. 그들에겐 186가지의 특권이 있다. 특권이 아니라 범죄 수준이다. 겉으론 국회의원 나리이지만 속으론 썩고 썩은 부패공화국의 주역들이다. 그들이 뒤에서 보이지 않게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아는 국민은 별로 없다.

질서의식은 실종되고 특권 위에 군림해서 겉치레와 유명세로 한 몫 하는 국회의원들은 정치판에서 걷어낼 때다. 범죄를 저질러도 특권으로 피해가는 자들은 범죄자일 뿐이다. 정직한 사람들만이 국민을 위해 봉사할 줄 안다. 이번 선거는 능력 있는 신인들의 노력과 열정, 국가관을 보고 일꾼을 뽑자. 무질서, 탐욕, 유명세에 빠진 부실한 정치인은 이제 보내자. 특권의식에 젖은 가짜 민주화 세력도 씻어내야 한다. 우리나라가 체제전쟁을 끝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가 바로 질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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