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이 눈앞에 오고 있다. 20일 인턴·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의료 현장을 이탈했다. 전공의 절반인 6415명이 사직서를 냈다. 사표 수리는 없다. 사직서를 낸 절반이 출근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20일 기준 831명에게 업무 개시명령을 내렸다. 전국 의대생들도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성명서를 냈다.

의료 현장은 공포를 동반한 불안감이 휩쓴다. 응급실에서 밤새 대기하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급한 암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한다. 외과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피를 흘리며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 의사들은 지금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의사인가’부터 물어봐야 한다. 내일 아침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오후 농부는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유아복 회사는 내일 아침 태어날 아기를 위해 아기옷을 생산하고, TV 리포터는 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마이크 들고 현장에서 보도해야 한다. 이것이 인류 문명의 역사다. 개돼지들은 못해도 인간은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지금 이 순간 의사들이 할 일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 꺼내 읽어 보는 것이다. 환자를 두고 의사들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의사들이 열받은 이유를 모르는 국민은 별로 없다.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5대 필수의료의 진료비가 턱없이 낮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연히 진료비 수가를 높여야 한다. 수술 현장에 마치 감시 모니터하듯 CCTV 설치하는 것도 재조정해야 한다. 의료사고 터지면 의사가 몽땅 책임지는 법률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응급환자들이 의사의 도움을 못 받고 죽어간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의사들은 있는 그대로의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방안에 승복해야 한다. 의사가 정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 중증진료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고, 사법 리스크를 줄여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책임지고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의사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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