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잔잔한 감동이다. 제목은 ‘전공의 선생님들께’. 권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의사협회 상근이사로 약대 6년제 학제 연장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쉽게 말해, 전공의들의 ‘파업 선배’다. 전공과목은 일반의이지만 의료법학을 전공한 법학박사기도 하다.

권 교수는 먼저 현재의 의료 대란을 "어떤 변호사도 명확하게 자문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정의했다. 그 누구도 전공의들을 위해 책임져줄 사람이 없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투쟁의 지도부도 없고, 정부는 업무개시명령과 국가위기 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해놓았다. 파업 동참과는 별개로 전공의 상당수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행정처분이 기록에 남는다는 것이다. 한번 기록에 남으면 의사직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닌다. 한국의 의사면허로 해외에 나갈 때는 치명적인 제약이 된다. 미국·일본 등 외국에 가서 취업하려면 평판 조회가 필요하다. 해외 의료업계도 유학생들처럼 ‘Good Standing Letter’를 요구하는데 그 서류에도 ‘행정처분’ 기록이 남게 된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36조 제3항에 ‘국가의 보건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책무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 후 병원에서 바로 나가버리면 사직서 제출이 아니라 법을 위반한 행정처분을 받게 될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을 권 교수는 상기시켰다. 그는 또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의료계 선배들이 뭔가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도 2000년 의사 파업 때 의협이 해준 건 소송비용과 벌금 대납이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강조했다. 모든 조건들을 떠나 의사가 의료 현장을 이탈해버리면 그 자체가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라는 의사 윤리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공의들이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퇴직절차를 밟으라고 했다. 반대로 진정으로 투쟁을 하고 싶다면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라고 충고했다. 의사로서 무책임한 일탈 행위만큼은 그만두라는 고언이다. 전공의들도 선배의 고언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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