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바뀌니 그나마 의인(義人)이 나타나는가. 문재인 정권에 머리 박고 굴종한 사법부에서 오랜만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관이 나왔다. 대전고등법원 모성준(48·사법연수원 32기) 판사는 최근 <빨대사회> 책을 냈다. 국제 사기범죄 조직이 모바일 메신저·인터넷·암호화폐 등에 ‘빨대’를 꽂고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의 잘못된 형사사법체계 때문에 그 수괴와 부하들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사법 현실을 폭로한 책이다.

모 판사가 지적한 잘못된 형사사법체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문재인 정권 때 민주당이 다수 의석의 힘으로 통과시킨 악법이다. 모 판사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광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호남 출신 현직 판사가 입법부를 ‘쎄게 조진’ 책이어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모 판사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전체 범죄(149만2433건)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이 사기(32만5848건)였다. 2022년도 사기 피해 총액은 29조2000억 원. 이는 멕시코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엘 차포가 30여 년간 거둔 범죄 수익(16조4000억 원)의 두 배라고 한다. 사기사건이 급증한 배경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인터넷·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주식 리딩·온라인 다단계 등의 범죄집단과 접목돼 폭증한 것. 배경에는 국내 범죄조직과 중국·북한의 조직간 연계도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범죄자들을 잡아들이지 못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사기범죄 피해액 5억 원 이상만 직접 수사한다. 검경 수사권이 나뉘게 되자 범죄 사실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권의 경계선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 개정된 형사소송법(312조 1항) 때문에 피고인이 동의할 때만 검찰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 검찰이 아무리 범죄 사실을 밝혀내도 우두머리가 혐의를 부인해버리면 부하들도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국가 수사기관이 무력화된 것이다.

모 판사는 국회가 국가 전체의 수사권과 형사법을 토막내는 바람에수사관·검사·판사들은 국제범죄조직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저지른 잘못인만큼 4월 10일 이후 22대 국회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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