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올해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에서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양대 정당의 지지율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에서는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 정치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현상이다. 바로 녹색정의당의 추락이 그것이다.

녹색정의당의 저조한 지지율은 하루이틀 현상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 당의 심상정 후보는 2.37%를 얻는 데 그쳤다. 올해 이 당의 지지율은 1%대에 고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 정도 지지율이라면 당의 존립이 위태롭다는 경고음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이 당의 비례대표 지지율이 9.67%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번 총선에서 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심상정의 지역구 당선도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심상정으로 대표되는 낡은 운동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혐오라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좌파 정당의 본진은 민주당이지만, 진보의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대표하는 정당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일반 국민이 진보의 가치와 명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나 마찬가지다.

지난 총선에서 이 정당은 류호정·장혜영 등 여성 후보들을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하며 페미니스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총선 이후 국회에 들어간 류호정 등이 보여준 이미지는 이 당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극대화시켰다. 류호정은 결국 정의당을 버리고 자신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 이준석이 주도하는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좌파 진영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 보여주는 지표는 이밖에도 많다. 정의당은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지표일 뿐이다.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다른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이 좌파 진영 전체가 조자룡 헌 창 쓰듯 휘둘러온 상징자산의 위력이 과거만 못하다는 점이다. 5·18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초부터 5·18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근거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5·18의 위력이 과거와 같지 못하다는 단적인 증거다. 강제력을 동원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얘기는, 그만큼 이 사건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는 자산이 각종 비극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성이 있고 상징적인 사건이 5·18이다. 5·18은 좌파 진영이 국민에게 ‘우리에게 무릎을 꿇어라’라고 강요할 수 있는 무기이자 상징이다. 좌파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을 반(反)대한민국의 자산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무기들은 위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민주당이 특별법까지 통과시키며 여론의 불을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국민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세월호를 너무 ‘우려먹은’ 반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하나의 기대주였던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도 지금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민들은 수산물 시장에 몰려 열심히 생선회를 즐기고 있다.

비극을 상징자산으로 삼아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정치 집단은 당연히 이 나라에 좀더 끔찍한 비극이 좀더 자주 발생하기를 고대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경악하는 충격적인 비극이 발생할수록 좌파들은 입이 귀에 걸린달까, 표정 관리하기에 바쁘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이런 집단이 언제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19세기의 독일 철학자 F.니체는 <우상의 황혼>이라는 책을 썼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볼 때마다 저 제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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