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지난 3월 19일의 일이다. 총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강원도 춘천을 찾아 지원 유세를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목표 의석수를 151석이라고 밝혔다. 1당이 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이고, 좀 욕심을 낸다면 151석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발언은 약간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최근 판세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좌파 진영이 200석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조차 나온다. 심지어 조국혁신당의 조국은 ‘3년은 너무 길다’며 야권이 200석을 넘겨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아예 개헌까지 실현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151석은 너무 소박한 목표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재명의 저 발언에는 실은 민주당의 진짜 고민 나아가 공포가 담겨 있다. 이 고민과 공포를 이해해야 현재 시국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오고, 이번 총선을 대하는 우파의 전략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다.

이번 총선을 대하는 민주당의 진짜 고민과 공포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난 20대 대선에 담긴 민심의 정확한 방향이 무엇인지, 대선 이후 이재명과 민주당이 전력을 기울였던 사실상의 대선 결과 거부와 국정 발목잡기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이번 총선에 어떻게 작용할까 하는 점이다.

지난 대선 이후 이재명과 민주당이 보인 막장 행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이렇게 극렬하게 선거 결과를 거부하고 국정 파괴에 나선 사례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재명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원내 제1당 민주당을 개인의 사유물로 만든 행보는 또 어떤가. 심지어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며 사상 초유의 사천(私薦)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대선은 문재인이 5년 동안 저지른 국가 파괴 행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그 심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가장 뚜렷한 증거가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권 퇴진 운동이다. 조국의 총선 슬로건 ‘3년은 너무 길다’가 역설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좌파들은 사실상 정치적인 사망으로 가고 있다는 것, 자신들이 전력을 기울여 망가뜨린 대한민국이 정상화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렵다는 고백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그 국민의 심판과 분노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언론 조작과 여권의 한심한 대응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파 진영 전체의 무능력과 철학 빈곤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 심판과 분노의 에너지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 에너지의 폭발을 이재명과 민주당은 가장 두려워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 목표는 기껏해야 151석’이라고 몸을 낮추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 사이에 잠재해 있는 이 심판과 분노의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그런 메시지를 내는 걸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 언론과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금기를 우파 정당이 자발적으로 내면화한 결과다. 이런 패배자 의식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파의 미래는 없다.

국민의힘 총선 슬로건은 ‘국민의힘이 합니다. 지금! 합니다’라고 한다. ‘일하고 싶다’는 길거리 현수막도 많이 보인다. 한다면 뭘 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건지 목표 자체가 삭제된 슬로건들이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선명한 자기 메시지조차 없는 우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 메시지가 없는 선거에서 어떻게 이기나? 한동훈 위원장의 각오 ‘죽더라도 서서 죽겠다’는 다짐, 멋지다. 하지만 그런 각오라면 뭘 위해 싸우고 죽겠다는 것인지부터 분명히 하라. 좌파 패권 30여 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진 이 나라를 회복시키겠다는 말도 못하나? 도대체 정치를 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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