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연구팀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최초의 세포’가 태동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약 40억년전 ‘원세포’(세포의 전구체)에 일어난 인산화 반응을 그 요인으로 꼽았다. /스크립스연구소

지구 생명체의 탄생을 이끈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우주의 신비를 푸는 것만큼 과학계의 오랜 연구과제다. 현재까지 우리가 찾아낸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흔적은 그린란드에서 발견된 약 37억년 전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단세포 광합성 미생물인 남세균의 퇴적물) 화석인데, 여전히 ‘최초의 세포’가 언제 어떻게 태동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한 연구팀이 세포의 전신, 즉 모든 지구 생명체의 시조 격인 ‘원세포(protocell)’가 만들어진 화학적 메커니즘의 단서를 찾아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의학연구소인 스크립스연구소의 라마나라야난 크리슈나무르티 박사팀은 최근 세계적 화학저널 ‘캠(Chem)’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지구가 탄생한지 약 5억년 뒤인 40억년전에 원세포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구 모양의 지방 집합체인 원세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구성단위인 세포의 전구체다. 원세포가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쳐 ‘최초의 세포’가 출현했고, 그 결과로 생명이 풍부한 지구가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원세포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의 화학물질을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해주는 보호막인 이중층 사슬 구조의 인지질 세포막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어떻게 이를 가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크리슈나무르티 박사는 "세포막 형성의 필수 요소는 지방산으로, 원세포 역시 처음엔 단일 사슬 지방산 세포막을 가졌을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원세포의 지방산 세포막이 이중층 인지질 세포막으로 전환된 과정의 규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세포가 이중층 인지질 세포막을 가지면 단일층 지방산 세포막 대비 훨씬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생명의 기원은 물론 초기 지구에서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통찰력을 넓혀줄 단초가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인지질을 구성하는 핵심인 인산염이 체내의 거의 모든 화학반응에 관여한다는 점에 착안해 지구 환경에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이전부터 인산염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로 인해 인산염 그룹(인산기)이 원세포의 분자에 추가되는 인산화 반응이 일어나 이중층 인지질 세포막 전환이 촉발됐다는 시나리오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원시지구를 모사한 환경에서 원시지구에 존재했던 화학물질로 ‘소포(vesicle)’를 생성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소포는 원세포와 유사하게 지방으로 둘러싸인 세포 내 자루 모양 소기관이다. 실험에서 소포가 만들어지고, 소포에서 인산화가 관찰된다면 가설은 이론적 신빙성을 가질 수 있다.

실험은 지방산과 글리세롤, 인산염을 세포막에 고정하는 분자를 포함한 화학물질을 다양한 비율과 온도, 산성도(pH), 금속이온 환경에서 혼합한 뒤 각 혼합액을 흔들거나 냉각, 가열해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논문의 제1저자인 수닐 풀레티쿠르티 박사는 "이후 형광 염료를 이용해 혼합액을 분석하자 소포가 발견됐고, 소포의 지방산 구조가 인지질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며 "이는 이와 유사한 화학적 반응이 40억년전 일어났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팀은 이번 실험을 통해 글리세롤 유래 지방산 화합물이 여러 금속 이온과 온도, 산성도에 대해 각기 다른 내성을 가진 소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최초의 세포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어류, 조류, 포유류, 갑각류 등 온갖 종류의 생명체로 진화해나간 근간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연구팀의 일원인 아쇼크 데니즈 박사는 "이 같은 발견은 초기 지구의 화학적 환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생명의 기원과 초기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혀내는 과학적 여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아울러 우리의 연구는 원세포가 현재의 세포가 되는 과정에서 핵심적·기능적 역할을 수행했을지도 모르는 흥미로운 물리학의 풍부함을 암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초기 지구에서 원세포의 역동성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해 왜 일부 원세포는 분열하고, 일부는 융합했는지를 알아낼 계획이다.

연구팀이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포함된 화학물질 혼합물의 화학반응을 유발한 결과, 원세포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소포(vesicle, 사진)’가 만들어졌다. /스크립스연구소
연구팀이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포함된 화학물질 혼합물의 화학반응을 유발한 결과, 원세포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소포(vesicle, 사진)’가 만들어졌다. /스크립스연구소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