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김대호

인간의 눈은 아주 작은 것도 잘 못 보지만, 아주 큰 것도 잘 못 본다. 아주 작은 것은 현미경으로 보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지리나 시대(정치지형) 같은 아주 큰 것은 어떻게 보나? 당연히 대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나 높은 곳에서 조망(眺望)해야 한다. 한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의 변화 혹은 정치지형의 변화를 조망하려면 사고의 시공간 확장이 필요하다.

1980년 5·18과 1985년 2·12 총선을 계기로 민주·진보·운동권 세력은 도덕적, 이념적, 정책적, 문화적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펼쳤고, 주류·보수·우파 정부·정당은 대체로 수세적이었다. 개인미디어(SNS) 화력도 진보가 압도적이었다. 이런 지형에서 보수 혁신과 중도확장은 진보의 가치와 정책을 수용하거나, 진보가 지적하는 흠결을 재빨리 없애는 것이었다. 그래서 5·18 관련 국가사죄와 보상도 하고, 5·18 성역화(헌법전문 수록 등)에도 동참하고, 5·18 막말 정치인 퇴출에도 앞장섰다.

그런데 지금 진보의 간판 가치와 정책 중에서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있나? 도덕적 우위와 민주주의 발전 선도? 이재명과 조국이 하는 짓을 보면 자는 소가 웃을 것이다.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한 불평등·양극화·일자리 문제 해결, 방송·교육·사법 민주화 등 뭐 하나 걸레가 되지 않은 것이 없다. SNS 화력 차도 다르다. 진보 가치의 밀물시대, 즉 진보 헤게모니가 강성한 시대의 보수 혁신은 강성·정통 보수와 멀어지고 진보와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막말 기준은 진보가 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다. 국민의힘 도태우·장예찬의 과거 발언에 대한 반응은 혹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우(愚)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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