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손광주

러시아 대선이 끝나고 푸틴 5기가 시작된다. 2030년까지 푸틴은 30년간 집권한다. 스탈린의 29년 집권을 넘어선다. 푸틴은 ‘차르’(황제)가 됐다. 최근 푸틴은 김정은에게 방탄차를 선물했다. 러시아 최초의 고급승용차 ‘아우루스’다.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린다. 외양도 롤스로이스와 닮았다. 판매가는 5억~11억 원 수준.


15일 김여정은 푸틴이 선물한 방탄차를 김정은이 처음 이용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푸틴이 선물한 승용차를 김정은이 시승했다는 사실을 굳이 김여정이 나서서 ‘담화’까지 발표한 배경이 뭘까. 김여정은 김정은의 승용차 이용이 "전면적으로 강화 발전되고 있는 조·로(북·러) 친선의 뚜렷한 증시(證示)로 된다"고 말했다.


푸틴의 승용차 선물은 오래 전의 역사적 기억을 불러낸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1주일 전인 9월 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가 열렸다. 이날 하얀 중절모에 흰색 양복 차림의 36세 김일성이 온갖 폼을 잡으며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렸다. 이 승용차를 선물해준 장본인이 누구였을까. 이오지프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공산권 전체의 수령이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꼬붕’ 김일성에게 승용차를 주며 충성을 요구했을 것이다.


푸틴이 김정은에게 준 방탄차의 의미도 단순히 ‘신변 위협 방지’ 차원이 아니다. 최근 북·러 관계의 밀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스탈린·김일성의 관계처럼. 김여정이 김정은의 방탄차 시승 담화를 낸 것도 스탈린·김일성 관계의 기억, 구소련·조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쇼-북한주민에게는 매우 고차원적인 속임수(詭道)-를 보여준 것이다.
푸틴·시진핑·김정은 같은 사실상의 종신 독재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임기 4~5년의 대통령을 우습게 본다. 독재자들은 집권 기간이 늘어갈수록 ‘자신이 곧 국가이자 인민’이라고 착각한다. ‘지도자’라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수령’은 ‘사회역사 발전의 유일한 동력’으로 규정돼 있다. 오직 수령 한 사람만이 사회·역사를 이끌어간다는 논리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국민과 민족 전체를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남북 7500만 민족 전체의 반역자가 누구인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패밀리 아닌가. 이보다 더 분명한 민족 반역자의 기준이 어디 있겠나. 내년(2025)이면 해방 8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 때부터 계산해도 현재의 북한주민들은 고조·증조·조부·아버지에 이어 자기 자신과 자식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법치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독일의 나치 정권도 북한체제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인류역사상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북한체제 같은 경우는 사례가 없다.


2차대전 중 나치에 저항한 독일인들이 적지 않았다. 잉게 숄이 쓴 <백장미>(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는 나치에 항거한 독일 청년학생들의 스토리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톰 크루즈 주연의 히틀러 암살 작전 영화 ‘발키리’도 실화다. 영국과 체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다룬 숀 엘리스 감독의 ‘앤트로포이드’는 나치 친위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제거 작전을 다뤘다. 이 작전은 끝내 성공했다. 체코 레지스탕스들의 영웅적인 자기희생이 없었으면 오늘날 체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작전명 앤트로포이드(Anthropoid)는 ‘유인원’이란 뜻이다. 오죽했으면 홀로코스트를 기획한 인간들을 유인원으로 봤을까. 따라서 나치보다 더 사악한 김정은을 ‘돼지’로 부르는 것은 정당한 비유로 봐야 할 것이다.


현 시기 북한에서 민주화 대중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안면인식 기술의 발전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중국도 민주화 운동의 흐름이 꺾였다. 외부세계 지원 없이 북한체제 변화는 어렵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북한 내부와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위성을 이용한 기술 개발과 대중화 방안이 핵심 과제다.


문제는 제1당사자인 대한민국 내부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심각한 정치위기에 빠져들었다. 경제위기·안보위기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정치위기다. 정치위기의 본질은 무엇이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되는지 모르고 ‘복수 혈전’에 빠져든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였던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5년을 거치며 복수 혈전이 본격화 됐다. 


역사적으로 예민한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한순간 국민의 잘못된 선택은 참혹한 후과(後果)를 가져온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정치위기를 극복할 정도의 충분한 자유민주주의 역량을 갖추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순간 여론 선동에 대중들은 대책 없이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독일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베토벤과 칸트, 괴테를 낳은 그들도 순간의 실수로 나치를 선택했다. 오는 4월 10일 대한민국 국민이 과연 무엇을 선택할지 필자는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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