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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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종료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에 ‘쓰나미’ 주의보가 들어왔다. 일본의 금리 정상화가 당장 글로벌 자본시장을 재편하지는 않겠지만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으로 자본 이동의 변화를 촉발시켜 변동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던 주요국의 통화정책 흐름에 역행해 왔다. 최근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앞두고 있는데, 이번에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준 국가로 글로벌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20조 달러(약 2경 6700조 원)로 추산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 일부가 일본으로 회귀할 경우 각국 증시를 비롯한 자본시장 타격이 불가피하다.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국가의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다른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말하는데, 엔 캐리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금리가 마이너스일 때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금리가 오르고 엔화도 강세를 보이면 환손실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엔화로 투자한 자산을 팔고 자금을 회수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벌어지게 된다.

현재 일본과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 격차는 3.5%포인트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에 본격 나설 경우 -0.1%에서 0~0.1%로금리를 올린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일본인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 금액은 14조 8650억 원으로 집계됐다. 14조 원이 넘는 일본 자금이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자금이 대거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시 쓰나미에 휩쓸릴 수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면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종료했지만 시장이 예상했던 엔화 강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끝내면 그동안 저평가됐던 엔화의 가치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환율은 반대로 움직였다.

실제 지난 19일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9엔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이 발표된 후 오히려 150엔까지 올랐다. 100엔당 897원 수준이던 원·엔 환율도 891원으로 내려왔다. 엔화가 달러와 원화 모두에 약세를 보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먼저 일본은행의 10년물 장기국채 매입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수익률곡선 제어(YCC) 정책을 폐기하면서도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현재 월 6조 엔 수준인 장기국채 매입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의 장기국채 매입이 지속되면 장기금리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엔화값 상승폭도 제한될 수 있다.

당분간 일본은행이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엔화 약세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결정문을 보면 금리 결정에 참여한 7명 중 2명은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물가와 임금 상승 간 선순환 흐름을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행 내부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장은 일본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넘어 연내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을 분석하는 전문가 28명을 대상으로 마이너스 금리정책 해제 이후 추가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54%인 15명은 올해라고 응답했다. 내년으로 추가 금리 인상 시기를 예상한 전문가는 18%인 5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기조를 변경하더라도 금리 인상은 천천히 추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향후 플러스 금리가 지속 가능하다고 입증될 경우에는 거대한 쓰나미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초저금리로 공급돼 왔던 일본의 대규모 유동성이 회수될 경우 글로벌 자본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이란 진단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촉각이 곤두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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