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2월 10일 베를린 글리니케(Glienicker) 다리, KGB 루돌프 아벨(Rudolf Abel) 대령과 미국 U-2기 조종사 프랜시스 파워스(Francis Powers)가 맞교환된다. 스파이 혐의로 아벨은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미국에서, 파워스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소련에서 복역 중이었다. 소련은 스파이 교환으로 살아 돌아온 최초의 KGB 요원 아벨을 소재로 1968년 영화 ‘데드 시즌’(Dead Season)을 만들었고, 영화에 감명받은 한 소년은 KGB에 들어가서 대통령까지 된다.

2015년 스파이 교환을 소재로 한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가 1억6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흥행에 성공한다. 스파이 교환은 냉전시대 유물이 아니었다. 스파이 교환에 필요한 특정 의전과 절차가 발전하면서 스파이 교환을 중심으로 스파이 세계의 독특한 문화적 관행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스파이 교환에 연루된 수감자는 정보요원이 아니어도 무방했다. 반체제 인사, 인권운동가도 포함됐다. 반드시 일대일 교환일 필요도 없었다.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과 교황도 협상에 동원됐다. 합의에 도달하는 데 정해진 기간은 따로 없었다. 며칠 안에 끝나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스파이 교환은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분쟁과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적국이나 과거 적국들 간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환할 스파이 선정과 교환 시기를 통해 상대국에 특정 메시지를 전달한다. 대내적으로는 정권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힘과 역량을 과시한다. 민주주의 정부에게는 공개 재판을 통해 비밀이 공개되는 것을 막는다. 자국의 귀중한 정보 자산을 보호한다.

2010년 7월 9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제공항에서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스파이 교환이 이뤄졌다. 화려한 외모로 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안나 채프먼(Anna Chapman) 등 10명의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러시아로 송환되고, 스파이 혐의로 러시아에 수감 중이던 세르게이 스크리팔(Sergei Skripal) 전 러시아 군사정보국(GRU) 대령, 바실렌코(Vasilenko) 전 KGB 요원 등 4명이 석방되어 서방으로 들어왔다.

미국과 러시아는 장기간의 스파이 재판이 자국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인식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잠재적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체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겠지만, 체포된 러시아 하급 정보요원들을 몇 년간 미국 감옥에 가둬두는 것이 자국의 국가 안보에 실질적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공개 재판을 통해 정보수집 기법과 정보 출처를 공개해야 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러시아 역시 이들의 재판과정에서 자국에 당혹스러운 폭로가 나오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스파이 교환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받은 구체적 이득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의 확전을 막을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이 마련되고, 양국 간 의사 소통과 협상을 위한 외교 채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스파이 교환의 중요한 성과였다. 스파이 교환은 궁극적으로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우리 선교사 한 사람이 얼마 전 러시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러시아 당국은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한국 선교사가) 외국 정보기관에 넘겼다"고만 발표했다. 현재로서는 러시아의 발표 내용 말고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국가 안보 관련 범죄는 정치적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와 러시아가 모두 이득이 되는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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