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조
오광조

우리는 평소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냉정한 판단력’, ‘컴퓨터 같은 두뇌’라는 표현은 칭찬이다. 반면 ‘감정적이다’, ‘개인감정에 사로잡혔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에 방해 요소로 여긴다. 감정은 이성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열등할까.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 <데카르트의 오류: 감정, 이성 그리고 인간의 뇌>를 보면 감정이 망가지면 이성도 영향받는 사례가 나온다.

30대 비즈니스맨인 엘리엇은 뇌종양을 제거하면서 오른쪽 전두엽도 손상을 입었다. 수술 후 모든 기능은 정상으로 보였고 일상생활도 가능했다.

그러나 감정 반응을 처리하는 전두엽 부위가 손상된 그는 이성적으로 인식은 했으나 감정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비참한 사진을 보여줘도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의사 결정에 문제가 생겼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반복해 결혼은 파탄 나고, 잘못된 투자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파산했다.

다마지오 교수는 우리가 의사 결정과 선택을 할 때는 감정이 개입되고 이때 뇌가 과거에 선택했던 행동과 연관된 감정이나 신체적 반응을 참고하여 무의식적으로 결정한다고 했다.

개인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이성이나 감정이 우선할 수 있지만 둘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책을 읽을 때 이성은 글을 이해하고 분석하지만 감정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책의 내용을 입체감 있게 받아들여 등장인물과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며 분노한다.

의미는 감정이 만든다. 남이 보기에 값어치 없는 물건도 추억이 묻으면 가치가 생긴다. 감정은 삶을 채색하여 인생을 윤기있게 바꾼다.

감정은 지는 꽃잎을 보고 낙화 아래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사랑이라고 슬퍼하지만 이성은 나무가 번식하려고 곤충을 유혹했던 도구가 임무를 다해 에너지를 아끼려 제거하는 과정으로 본다.

감정은 의사결정의 보조도구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근본 주체다. 중요한 결정은 감정이 참여한다. 정보를 이성적으로 고려해도 최종판단은 감정의 몫이다. 이성은 설득이 되지만 감정은 통제할 수 없다.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 나의 본질이다.

감정과 이성은 삶을 끌고 가는 두 바퀴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면 인생이 삐걱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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