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박재형

시장의 대혼란을 초래했던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창업자의 한국 송환이 잠정 보류됐다. 이른바 ‘코인 사기’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450억 달러(약 59조 원) 규모의 피해를 안긴 권씨는 한국과 미국의 사법 당국이 신병 확보에 나서자 도피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 소지 혐의로 체포된 후 한미 양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른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왔다.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되자 곧바로 한국·미국·싱가포르 등 각국 사법 당국들이 그를 자국으로 데려와 처벌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한미 양국의 송환 경쟁이 특히 치열했다. 한국은 권씨가 한국인이며 문제의 사업 동업자들이 이미 한국에서 기소됐다는 이유에서, 미국은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자기 나라로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몬테네그로 사법부의 권도형 인도 결정 과정은 여러 차례 번복과 보류가 이어졌다. 가장 최근 한국 송환이 결정되며 몬테네그로법원은 이것이 최종 결정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검찰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송환이 다시 보류됐다. 몬테네그로가 이처럼 범죄자 한 명의 인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송환 경쟁에 절대로 미국 송환만은 피하겠다는 권씨의 입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떻게든 권씨를 자국에서 조사,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발칸반도의 개발도상국 몬테네그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은 가능한 외교력을 모두 동원해 권씨의 자국 송환을 추진 중이다. 한국 역시 어느 면에서나 그를 한국에서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양국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주목되는 부분은 권씨의 입장이다.

미국 뉴욕에서는 25일(현지시간) 권씨의 사기 혐의에 대한 재판이 그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됐다. 뉴욕 연방검찰이 제기한 권씨의 혐의는 증권 사기 2건, 상품 사기 2건,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2건, 사기 음모, 시장 조작 음모 등 총 8가지에 달한다. 만약 한국 검찰이 이 같은 혐의로 기소해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권씨는 최대 징역 40년형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40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범죄에 형을 매겨 합산하는 미국에서는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사범 최대 형량이 40년이라고 해도, 실제로 징역 40년형을 받아 현재 30대 초반인 그가 일흔이 넘어 출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 검찰로서는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진 지능형 사기 범죄 혐의들에 대해 모두 유죄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권씨가 이미 기소된 공범들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소위 ‘전관 변호사’들을 총동원할 경우 한국 법원이 얼마나 추상 같은 처벌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반면, 미국으로 송환된 후 재판을 받는 상황은 권씨에게는 실로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미국 검찰은 지난해 사기, 자금 세탁 등 7건의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은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의 재판에서 징역 50년을 구형했다. 참고로 그가 받는 혐의들은 권도형 경우보다 비교적 덜 무거운 편이다. 무엇보다 범죄에 따른 피해 범위와 규모 면에서도 권씨 쪽이 엄청나게 더 크다.

한국에서는 대형 금융 사기가 끊이지 않으며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제는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인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초대형 사기 범죄를 저질러 놓고 국내 송환을 고집한다. 급속히 세계화되고 진화하는 금융 사기 범죄에 정부 당국이 얼마나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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