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재
김병재

예술인에 대한 국가 보조금 논란은 외국에서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얼마전 ‘영국 예술위, 보조금 수혜자들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을 촉구’(UK Arts Funding Body urges grantees to stay out of politics)라는 제목의 외신 기사를 봤다. 기사는 "ACE(영국 예술위)가 보조금 수령자에게 ‘명백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내용은 공공자금 조달계획이나 기회와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검열에 해당한다고 반발했다"고 전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민 세금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는 특정 정치단체에 편들지 말라는 게 ACE 입장이다. 영국은 세익스피어로 유명한 문화 강국이다. 문화를 ‘창조경제’로 환원해 국부를 창출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나라다. 하지만 공적 자금 운영에 관한 한 정치 중립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예술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매년 4000억, 1000억 원 가까이 지원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원을 받지 못한 일부 예술인들은 ‘정권 퇴진’ 등 정치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블랙 리스트도 예술인 중심의 국가 보조금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국가 보조금 정책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가 소비자에게 직접 문화상품권 등을 줘 예술(품)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바우처 방식이다.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청년문화예술패스’도 같은 것이다. 전국 19세 청년들이 공연·전시 관람시 1인당 1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 카드다. 프랑스·독일·스페인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15세 20유로, 16·17세 각 30유로, 18세 300유로 등 4년간 총 380유로를 지급한다.

국가의 예술 지원 방식이 다 바우처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재 등은 국가가 직접 지원하지만 나머지는 소비자에게 맡겨야 한다. 소비자는 문화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 리스트 등 국가 지원금을 둘러싼 부작용도 불식하고 소비자의 문화 향유권을 신장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술이 정치화, 세력화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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