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야 놀라지 마라

 

백구(白鷗)야 놀라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이 버리시니 갈 곳 없어 예 왔노라

이제는 찾을 이 없으니 너를 좇아 놀리라

김천택(金天澤; 1680년대 말 ~ 미상)

 

/이욱진 기자
/이욱진 기자

☞시조시인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당시 가객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그 역시 중인 계층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직은 젊었을 때 잠시 지낸 듯하고, 한평생을 자연 속에서 가객(歌客)으로 여생을 마쳤을 터이다.

이 시는 임금에게 버림받은 신하가 자연으로 들어가 갈매기와 더불어 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백구(白鷗)는 진돗개 백구가 아니라 바닷가에 사는 갈매기를 뜻한다. 임금에게 버림받는 화자(話者)가 권세를 버리고 이름 모를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와 노닐며 살겠다는 말이다.

화자는 초장에서 백구를 불러들여 놀라지 말라고 한다. 갈매기를 잡으러 온 게 아니라 친해지기 위해 온 것인데, 이는 속세를 떠나 바닷가 이름 모를 곳에서 은거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중장에서는 화자의 처지 즉 ‘성상(聖上)에게 버림받아 오갈 데 없는 신세를 밝힌다.

대개 이런 상황이라면 처지를 비관하기 마련이지만 화자는 오히려 자연 속에서 갈매기와 함께 노닐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백구’를 화자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설정하여 말을 건네는 방식을 사용하는가 하면, 감탄형 종결어미 등을 사용하여 안분지족(安分知足) 하고자 하는 화자의 정서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챙겨야 할 것은 ‘성상(聖上)에게 버림받은’ 화자의 태도이다. 임금에게 버림받은 화자는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즐길 기회로 삼겠다고 한다. 화자의 상황 즉 ‘성상(聖上)이 버리시니 갈 곳 없어 예 왔노라’는 대목은 두말할 여지없이 비극적이다. 그런데 화자는 궁극적으로 ‘갈매기를 좇아 놀겠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의 전환을 꾀한다. 이는 세상만사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화자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똑같은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김천택(金天澤)은 조선 영조 때 문명을 날린 시조시인이면서 ‘청구영언’을 편찬한 사람이다. ‘청구영언’은 ‘하여가’와 ‘단심가’를 비롯하여 시조 580수를 엮어 편찬한 시조집이다. 제목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데 한자로 하면 靑丘詠言·靑邱永言·靑丘영言 등으로 표기된다. ‘청구’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영언’은 노래를 뜻하므로, 직역하면 우리나라 구전노래를 한데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김천택은 우리나라 노래가 구전으로 읊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노라고 서문에 적고 있다. 선조들이 남긴 시조작품을 소중히 여긴 한 시조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시조집인 이 책의 원본은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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