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1위다. 주요 5개국(G5) 평균 14.4%에 비하면 약 3배에 달한다.

또 다른 통계를 보면 2021년 5월 기준 우리나라의 고령층(55~ 79세) 인구는 1476만6000명이다. 이 가운데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등 연금 수령자 비율은 48.4%인 714만1000명,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64만원이다. 연금을 받는 고령층 인구의 소득대체율은 20% 수준이며, 아예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고령층 인구도 762만5000명에 달한다. 100세 시대에 대한민국 노인들은 고달픈 ‘생활전선’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유독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자리에서 일찍 밀려나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10일 제4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의 주요 분야를 논의하면서 ‘고령자 계속고용제’카드를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령자 계속고용제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재고용, 정년 폐지 등 다양한 고용 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고령자고용법은 60세를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같은 법 규정에 손대지 않고 사실상 고용 연장 효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 연장 논의는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세계 최저 출산율이란 우리 사회의 재앙적 인구구조를 감안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실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3738만명인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30년에는 3381만명으로 357만명이나 급감할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3년 0%대에 진입한 뒤 2047~2060년에는 마이너스로 추락해 OECD 꼴찌로 전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와 있는 상태다.

인구구조상 생산연령인구를 늘리기는 어렵다. 그런 만큼 노인을 포함해 불어나는 고령층을 활용해서 생산성을 유지하고, 조만간 닥칠 초고령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 같은 고용 연장이 사실상의 ‘정년 연장’으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에도 고령자 계속고용제를 꺼내 든 적이 있다. 하지만 기업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년이 지난 직원을 ‘무작정’생산현장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이 유의미한가 여부다.

지난해 9월 대한상의 설문조사를 보면 기업의 89%는 고용 연장 뒤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연공급 임금구조는 그대로 둔 채 단순히 고용만 연장하는 것은 정년 연장의 우회로(迂廻路)가 되면서 인건비 부담만 크게 늘리기 때문이다. 연공급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로 연령 증가에 따른 생계비 보전의 성격이 강하다.

고령자 계속고용제 도입으로 정작 혜택을 보는 것은 공공부문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기업의 경우 산업의 등락에 따른 주기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사실상의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는 것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처럼 인위적 시장가격 통제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층 인구의 고용 촉진을 위해서는 노조 편향 등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고용시장 유연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어떤 정책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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