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이정민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보수진영에서는 이번 총선에 대한 낙관론이 우세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사천 논란 등으로 국민의힘이 170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행복회로에 전류가 넘쳐흘렀다. 하지만 지금 그 행복회로는 미세한 전류만이 흐르는 우울회로로 바뀌었다.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야권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그 근거로 이번 선거 판세를 좌우할 한강벨트·낙동강벨트의 열세적 여론조사만 공개되고 있다. 언론 환경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야권에 유리한 여론조사 기관이 많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의 험지만을 주로 타겟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보수진영 전체가 무언가 패배주의에 빠진 것처럼 좀처럼 기세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선거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지금, 정확한 문제와 진단이 필요하다.

현재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초기에 보수진영에게는 행복회로를 위한 좋은 땔감이 됐다. 이재명의 수많은 범죄 혐의에 자녀 입시 비리로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조국 사태의 장본인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조차도 차마 입당시킬 수 없었던 그런 인물이 본 선거판에 참전했다? 그저 웃음거리였다.

그러나 조국은 ‘윤석열 정권의 조기 퇴진’이라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좌파진영에 상기시키며 민주당의 ‘보완재’로서 확실히 포지셔닝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방탄하기 위한 개인적 목적만 있었을 뿐이었다. 좌파진영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우왕좌왕했다. 조국의 등장은 ‘좌파진영이 왜 이번 총선을 치르는가’에 대한 명확한 미션을 부여했다. 2016년 말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그 달콤했던 탄핵에 대한 기억이다. 이러한 집단적 목적의식의 부활로 좌파진영은 다시 결집하게 됐고 그 기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도 외연 확장 같은 모호한 노선이 아닌 선명한 노선을 선택한 결과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한 달 동안 오로지 중도에 집착했다. 전통적 보수 지지를 기반으로 여성과 사회적 약자 등에 어필하면 필승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외연 확장이라는 허상에 매몰된 채 나이브한 전략만으로 진영의 집단 목적의식을 상실케 했다. 도태우·장예찬의 공천 취소와 비례대표 논란은 ‘총선에서 국힘이 이기면 뭐가 달라지는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총선에서 이기고 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 연상되어야 하는데, 그런 상상에 대한 희열조차도 그려지지 않았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효과는 10년 이후에나 가능하고, 보수에게 물가와 경제 문제는 정부보다 민간의 시장기능이 우선이다. 부동산과 종부세 문제는 이미 윤 정부를 통해 해결됐다. 결국 이러한 정책 아젠다들은 보수진영이 이번 총선에서 결집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

정당은 비영리 조직이다. 비영리 경영이 타 경영과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는 미션의 역할이다. 조국혁신당 돌풍은 오히려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에 ‘우리가 왜 이겨야 하는지’에 대한 미션을 점점 상기시켜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고 문재인과 이재명을 구속시킨다는 목적의식의 소환이다. 대통령실에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가 컸던 후보들이 유난히 여론조사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목적의식 이탈에 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세다. 기세는 집단의 목적의식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국민의힘은 더이상 우왕좌왕하지 말고 하나의 표지판만 보고 가야 한다. ‘목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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