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정치학자인 앤솔라비히어와 아이엔거는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정치적 암 덩어리’(political cancer) 혹은 ‘자해 산업’(the self-inflicted industry)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점점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이 정치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결국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 표현물들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면서 선거전은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 정당이나 후보들도 온라인 매체를 선거 캠페인에 적극 활용하면서, 네거티브 캠페인은 선거운동 중심에 위치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서로 할퀴고 물어뜯으면서 정치권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자해 산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위세를 떨치고, ‘냄비는 밟아야 맛’ 같은 여성 비하적 선거구호를 버젓이 내건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 아니다. 고구마줄기처럼 줄지어 터져나오고 있는 일부 정치인과 후보들의 막말 파장은 선거 분위기마저 급반전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저질 막말 후보를 사퇴시키기는커녕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식의 후안무치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도리어 맹목적 팬덤 지지자들에게 그런 부도덕한 욕설·막말이 강한 전투력으로 무장한 전사처럼 추앙되고 있다. 저질 막말 정치에 익숙해진 일부 국민은 그런 정도의 욕설·막말 정치에는 내성이 생긴 듯하다.

저질·막말 선거 운동이 횡행하는 근원은 당연히 정치인과 정당이다. 하지만 각종 언론과 여론조사들도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합리적 투표 결정에 필요한 정책이나 공약은 뒷전에 밀어 놓고, 선거운동 스케치와 판세 같은 흥미 위주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언론들도 막말 정치의 조력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요 정당과 후보들의 막말·욕설 선거운동은 언론사에게는 매우 상업성 높은 선정 보도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퍼져 있는 정제되지 않은 막말·욕설 주장들을 기성 매체들이 다시 받아 재확산시키는 일도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런 온·오프라인 막말 연계 메커니즘은 가짜뉴스가 더 극성을 떠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선거 관련 여론조사다. 선거기간 중 지지율 조사 결과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지지율 조사 결과는 시청자나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경마식 보도’(horse-racing report)의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보도는 선거 분위기뿐 아니라 승패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 1~2주 사이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조사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유로 ‘홍보수석의 부적절한 발언’ ‘신임 호주대사 출국’ 같은 것들이 지적되고 있다. 그전에는 ‘파행 공천 논란’으로 야당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지율 변화 원인으로 정책이나 공약 같은 요인들은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이전이기도 하고 최근 선거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정당과 후보자들이 정책·공약보다 상대방 실수나 헛발질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것이다. 어쩌면 언론사들이나 여론조사 기관들도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막말 선거 캠페인으로 투표 참여율이 낮아지면, 결국 좋은 것은 강력한 팬덤 지지층을 가진 정당이나 후보들이다. 어쩌면 일부 정파들도 막말 정치를 내심 환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 정치가 심각한 자해 산업이 된 것은 정치권과 언론, 여론조사 기관 모두에게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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