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를 통해 본 '음험한 전쟁'

2022년 3월, 앙투안 이장바르 지음, 박효은 옮김.
2022년 3월, 앙투안 이장바르 지음, 박효은 옮김.

책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18세기 퇴폐적인 프랑스 사교계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 소설 ‘위험한 관계’는 1959년 이래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1988년판 헐리우드 영화 ‘위험한 관계’가 가장 성공작).

다양하게 리메이크돼 온 것으로도 유명한데, 2003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도 그 중 하나다. 진정한 사랑과 애욕이 뒤엉킨 주인공들의 인연을 21세기 프랑스-중국의 관계성에 비유한 듯하다.

<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는 21세기 들어 특히 본격화된 프랑스-중국의 ‘음험한 전쟁’ 주 전장이 대서양 쪽으로 뻗은 ‘브르타뉴 반도’임을 논증했다. 왜 하필 브르타뉴일까? 바로 프랑스 국방의 핵심지역이기 때문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SSBN)기지를 비롯해 인근엔 프랑스 방위산업청이 있고, 사이버산학단지와 특별군사학교, 안보산업 분야와 관련 기업 400개가 위치한다.

언제부턴가 브르타뉴 주둔 군인들과 젊은 중국계 여학생들의 결혼이 ‘이상 급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방·국가안보사무국(SGDSN)이 관련 보고서까지 냈을 정도다. 때맞춰 그 지역 대학에 공자학원도 들어온다.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이겠는가, 저자는 묻는다.

한 공학계열 그랑제콜 박사과정 학생 30명 중 10명이 하얼빈기술연구소 출신이다. 하얼빈공대 산하의 이 연구소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기 시스템을 설계·구매하는 국방과학기술산업국이 관할한다. 문제의 중국계 박사과정 학생들은 프랑스에서 군용으로 운용 가능한 탐색장비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앞서 ‘로제 나슬렝 사건’ ‘스트라스부르대학 연구원 사건’ 등 중국의 개입이 분명해 보이는 여러 기술 불법 탈취 사건의 연장선에서 이런 문제들을 바라봤을 때 혐의가 뚜렷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중국의 프랑스 침투 배경엔 시진핑이 제시한 경제비전인 ‘메이드 인 차이나(中國製造) 2025’가 도사리고 있다. "2025년까지 로봇공학, 항공 및 생명 공학과 같은 약 10개 핵심산업의 70%가 중국 국내에서 생산·보급돼야 하는데, 결국 순진하면서도 애매한 입지의 강국인 프랑스가 새롭게 떠오르는 패권국인 중국의 경제적 기술적 야심의 첫번째 먹잇감이 돼버린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공격 및 선진기술 탈취 주타깃은 바로 프랑스이며, 실제로 프랑스 고위관리나 정보전문가들 역시 프랑스 기업들에게 가장 공격적인 국가가 중국이라고 단언한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세계 유수의 연구소에 뛰어난 학생들을 파견해 왔다. 중국국가유학기금관리위원회(CSC)는 박사과정 연구원 1인당 약 5만 유로(6700 만원)를 프랑스 연구소에 지원한다. 프랑스가 지원한 최고 위험도(P4)수준의 실험실은 또 어떤가. 중국의 강력한 생물학무기 개발계획 의혹이 이미 제기된 상황이기에 프랑스 정보기관의 우려는 깊어간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스 원자력·재생에너지청(CEA)을 비롯해 5개 주요 관련 기관들이 중국의 사이버 공격을 받은 것쯤은 예상밖의 충격으로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거물급 친중인사들이 많은 이유가 뭘까. ‘68세대’의 파악 없이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1980년대 이후 서유럽과 미국, 이른바 ‘서방세계’를 이끌어 온 주류는 ‘68’때 10~20대를 보낸, 적어도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다(운동권 출신 아니라도 대한민국에서 80년대 초중반 대학생이었다면 대부분 그 정신적 자장磁場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

당시 네오 맑시즘을 주도하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을 받았는데, 정작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 인물들(아도르노, 하버마스 등)은 나중에 ‘68의 과격화’를 비판하다 운동권학생들에게 곤혹을 치른다. 80년 대 들어 68세대가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하게 된다. 이민자문제, ‘표현의 자유’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테러, 다양성을 이유로 더욱 비주류화된 기독교의 현실 등이 오늘날 ‘프랑스의 몰락’ ‘유럽의 붕괴’를 상징한다. 그 출발은 ‘6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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