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강규형

몇 주 전 칼럼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야기를 했었다. 그에 관한 얘기는 끝이 없다.

나와 카라얀과의 첫 만남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연주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음악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젊은 시절 카라얀은 명 프로듀서 월터 레게(Walter Legge)의 영향 아래 주로 필하모니아와 EMI/Angel에서 작업하며 싱싱하고 세련된 음악을 보여주었다. 후반기에는 주로 ‘그의 악기’인 베를린필하모닉과 ‘노란 딱지’ 도이치 그라모폰 레코딩을 통해 개성과 에고를 남김없이 표출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그의 음악은 중후하고 기름지고 화려해졌으며, 잘 훈련된 베를린필의 압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카라얀은 명 프로듀서들이 권력을 가졌던 시기에 대(大)지휘자들이 힘을 갖도록 변화시킨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기악협주자들과 성악가들을 거대한 오케스트라 밑에 묻히게 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특히 그의 인생 중·후반기 무렵 두드러지게 나타난 에고 때문에, 개성있는 거장 연주자보다 그의 개성을 잘 따라오는 경량급 신인 연주자들을 선호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카라얀은 전 인생을 통틀어 많은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고 육성한 공이 있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우리나라 소프라노 조수미를 발굴한 것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일화이다. 안네 조피 무터, 자비네 마이어, 크리스티앙 페라스, 군둘라 야노비츠, 헬가 데르네슈, 호세 카레라스 등은 그가 선호하고 끊임없이 지원하며 키워낸 음악가이다.

특히 국제인 활동이 거의 없었던 군둘라 야노비츠를 기용해 리하르트 바그너의 ‘발퀴레’, 하이든의 ‘천지창조’,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등을 녹음해서 그녀의 진가를 후세에 남겼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이 소프라노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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