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강규형

카라얀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1930-2004).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그는 은둔 생활 끝에 2004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명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로 독일에서 태어났다. 나치 체제를 반대한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으며, 이름도 스페인어식인 카를로스다.

웬일인지 아버지 에리히는 아들이 음악 하는 것을 반대해서, 정통적인 음악교육 과정을 못 밟았다. 그러나 재능을 숨길 수 없어 몰래 음악을 하다가 대 지휘자로 성장한 독특한 경우다. 마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반대 때문에 몰래 음악을 한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동생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작곡가·지휘자가 됐던 경우와 비슷하다.

나는 만약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사실 전혀 그렇지 않지만), 황제와 같은 지위를 누렸던 카라얀보다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클라이버가 음악애호가 마음속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상임지휘자로 한 연주단체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활동이 매우 적었다. 드물게 레코딩을 했는데, 그가 한 레코딩은 매번 전설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몇 안 되는 그의 유산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데뷔 레코딩은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였다. 야노비츠, 마티스, 슈라이어, 아담 등의 독일계 명 성악가와 같이 연주한 이 판은 아직도 명반의 위치에 있다. 그 이후 녹음한 베토벤 교항곡 5번, 7번, 4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코딩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더 신비롭게 보인 측면도 있지만, 그의 연주는 늘 위대했다. 완벽주의자여서 그의 판들은 수가 적다. 자유인으로 살았던 그의 멋진 지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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