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선거를 바로잡는 ‘하나님의 스피커’, 민경욱 전 의원 인터뷰

어릴적 헌금이 없어 못 갔던 교회...미션스쿨 다니며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로 전달 잘 해...늦깎이 기자생활서 각종 상 휩쓸며 활약

뉴스앵커·美특파원 등 모든 경험 사용해 부정선거 방지 활동에 사용하신 하나님
결과에 실망하지 않도록 성경 말씀 주신 하나님...황교안 전 총리 만난 계기가 돼

코로나 중증서 극적으로 하나님이 살려주셔...“‘죽으면 죽으리라’로 소명 이뤘죠”
“국투본은 현재 법정투쟁에 전념...대법원 정의로운 판결 나오도록 기도해 달라”

지난 3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민경욱 전 의원. 그는 "인생을 돌아보니 제 마음속엔 항상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지난 3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민경욱 전 의원. 그는 "인생을 돌아보니 제 마음속엔 항상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하나님은 나를 죽이고 살리시는 분, 나를 흥하고 망하게 하시는 분, 나를 당신의 기적의 도구로 써주시는 분이십니다. 즉, 저의 주권자(主權者) 이십니다. 인생을 돌아보니 제 마음속엔 항상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고, 그분의 조화와 역사를 늘 마음속에 두고 여러 호기심과 의심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지난 3월 대선 후 코로나와 급성폐렴으로 위독한 상황까지 갔다 살아났다는 민경욱 전 국회의원. 지난 3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직접 만난 그의 얼굴은 역시 병색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약간은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의 얼굴과 눈에서는 유독 광채가 나 보였다.

하나님께 받은 비전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 그 역할에 부족함이 없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를 고발하고 이 세상에 올바른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주님이 저에게 주신 비전”이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는 그에게서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한 차원 넘어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마치 성경의 ‘맨발의 선지자’ 이사야처럼,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국투본) 대표로 지난 2년간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았던 ‘부정선거’ 이슈에 대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외롭게 문제의식을 외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해 오면서 재검표에 이어 현재의 법정투쟁까지 이끌어 온 민 전 의원. 그의 인생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섭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유일보가 그에게 직접 물었다.

-언제 처음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두 번 교회에 갔어요. 처음 교회에 가니 함께 즐겁게 율동도 하고 예쁜 여자 선생님도 계시고 아주 즐겁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너무 좋았는데, 둘째 날 헌금을 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집은 가난했어요. 전  그 가난한 가족의 장남이었습니다.

민 전 의원은 "17년간 13평 집에서 부모님과 삼형제가 살았던 가난한 집의 장남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석구 기자
민 전 의원은 "17년간 13평 집에서 부모님과 삼형제가 살았던 가난한 집의 장남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석구 기자

울면서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1원이었는지 10원이었는지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는데 헌금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두 번을 교회에 갔는데, 이후엔 헌금이 부담이 돼 교회에 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녔던 송도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가 미션스쿨이라서 그때부터는 일상적으로 하나님 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999년부터 1년간 미국 미주리주에 연수를 가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가장 치열하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91년에 KBS 입사 후 기자 생활이 너무 바쁘고 어려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고, 교회 출석도 잘 못했었는데 연수를 갔을 때 한인교회를 꾸준하게 나가게 됐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어서 당시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기였어요. 당시 부활절에 가상칠언을 모티브로 한 칸타타를 하면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때 뿐만이 아니라 돌아보면 제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계시며 저를 지켜주셨어요.”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로 전달하는 역할 잘 해...늦깎이 기자생활서 각종 상 휩쓸며 활약

-목소리가 좋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크고 맑은 목소리를 가진 저를 만인 앞에 세우셨고, 저의 한 마디 말에 온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영롱한 목소리로 주의 은혜도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도 잘 했고, 연극, 구령, 한국말 웅변, 영어 웅변 등을 했습니다. 목소리가 크고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유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대학교 때부터는 성가대를 했구요. 또 하나님께서 방송기자, 뉴스앵커, 청와대 대변인, 정당 원내 대변인, 워싱턴 특파원 등의 일을 통해 제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을 잘 하는 역할로 쓰셨습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기자이셨나요.

“어렸을 때 꿈은 판사였어요. 서울대 법대 진학에 어려운 점수가 나와 행정고시를 보려고 연세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1학년 때부터 2년간 교내 영자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기자가 치열하지만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연세대 재학 중 교내 영자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기자의 매력을 알게 됐다는 민 전 의원. 사진은 민 전 의원이 2013년 연세대 교내지인 '연세춘추'와 인터뷰 중인 모습. /연세춘추
연세대 재학 중 교내 영자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기자의 매력을 알게 됐다는 민 전 의원. 사진은 민 전 의원이 2013년 연세대 교내지인 '연세춘추'와 인터뷰 중인 모습. /연세춘추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며 고시공부를 다시 해보려 했지만 취미를 가지지 못했고, 복학한 뒤로는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언론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20번이나 떨어지고 마지막 지원에 다른 곳들은 나이 제한에 다 걸렸었는데 유일하게 KBS만 시험을 볼 수 있게 돼 정말 기적적으로 간신히 29살에 KBS 기자가 됐어요. 늦게 됐지만 그만큼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남들의 두 배 열심히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기자는 무관의 제왕이며 사회의 목탁입니다. 그 역할에 충실했고 그 지위를 만끽했습니다. 이달의 기자상, 사내 특종상,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고, 9시뉴스 앵커, 워싱턴 특파원, 문화부장을 역임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 간증이 있으시다면.

“유방암을 앓던 여성이 억울한 일을 당해 청와대를 비롯한 사방팔방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못 얻었습니다. 이후 이 여성과 남편 부부가 똑똑한 기자 1명을 만나게 해 달라고 40일간 새벽기도를 합니다. 그 새벽기도를 마친 날, KBS에 그들이 건 전화를 제가 받았습니다. 

저는 어떤 영문인지도 모르고 일이 신기하게 풀리는대로 몸을 맡기고 그 사건을 최선을 다해 취재를 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취재는 결국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그들의 억울한 사연은 KBS 9시 뉴스와 다큐멘터리로 국민들에게 전달됐습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이 환자는 의료사고를 일으킨 대학병원으로부터 자신이 그동안 냈던 치료비 전액을 돌려받았고, 그 돈으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사망의 계곡의 섰던 그 환자는 그 이후 5년 넘게 생존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저는 그들의 40일 기도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받았다고 생각한 전화가 40일 동안 기도해서 얻은 기회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하신 감동적인 일입니다.

이는 일명 ‘김문자’씨 사건으로 하나님의 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김문자 여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기적을 도구로 저를 사용하시고 그녀를 살리신 일입니다. 이 사건은 또한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자·뉴스앵커·美특파원 등 모든 경험 사용해 부정선거 방지 활동에 사용하신 하나님

-9시 뉴스 앵커와 워싱턴 특파원 역임 등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나요.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9시 뉴스 앵커가 되게 해 주세요’, ‘워싱턴 특파원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서원 기도들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당시 제 얼굴 피부도 안 좋았고 여러 면에서 제가 앵커나 특파원이 될 상황이 안 됐는데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시켜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 간 것도 사실 제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KBS 9시 뉴스 앵커 시절의 민 전 의원의 모습. /KBS 뉴스 영상 캡처
KBS 9시 뉴스 앵커 시절의 민 전 의원의 모습. /KBS 뉴스 영상 캡처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KBS 기자로 일하고 뉴스 앵커와 미국 특파원으로 일하게 하신 일들이 모두 지금의 일(부정선거 방지)을 위해 예비시킨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제가 작년 2월에 미국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CPAC(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얻었어요. 트럼프와 같은 자리에서 영어로 연설을 했는데, 제가 KBS 워싱턴 특파원 경험과 영어연극도 해본 경험이 있었고, 영어웅변도 했었고요. 또 그런 자리에서는 떨면 못하는데 9시뉴스 앵커를 한 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한 연설이 완벽한 연설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연설로 인해 이후 부정선거 투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예비시킨 저의 경력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부정선거 방지 활동을 하는데 기자 생활의 경험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나요.

“부정선거를 밝히는 일에 저의 두 가지 취재 경험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통계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1군 건설업체들의 입찰 담합 사건’을 취재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연루됐던 41개 업체에 대표들이 모두 사법처리됐고, 저는 그 건으로 입사 4년차에 한국방송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인터넷 뱅킹 해킹 사건’을 취재해 20분짜리 다큐멘터리 2개를 제작했습니다. 

이 두 가지 취재 경험을 통해 해킹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범죄 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선거가 일어났을 때 남들보다 빠르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도 간증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운동 시절 새벽에 거리에 서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차들을 기다리면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힘을 얻었어요. 

그러면서 그때 서원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부족한 저를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주신다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김문자씨 사건을 여러 곳에서 간증하겠습니다’ 라고요. 그리고 당선이 된 후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간증도 몇 군데 교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거리에서 선거유세 중인 민 전 의원. /민경욱 의원 제공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거리에서 선거유세 중인 민 전 의원. /민경욱 의원 제공

◇결과에 실망하지 않도록 ‘여호수아 1:9’ 말씀 주신 하나님...황교안 전 총리 만난 계기 돼

-국투본 활동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많이 느끼셨나요.

“참 신기한 것은, 하나님은 저를 부정선거 투쟁 전선에 앞장 선 장수로 만들기 위해 많은 일을 미리 하셨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저를 공천에서 두 번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붙이신 것입니다. 사실 정치인이 공천을 두 번 떨어졌다가 회복되는 건 불가능해요. 당시 저는 ‘아, 이번 선거가 어려운 선거가 될 모양이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그냥 출마해도 당연히 당선된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씩이나 공천 파동을 겪게 하시는 걸 보니 ‘이번 선거가 어려워서 내 이름을 높이려고 하시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시 새벽기도 나가서 했던 기도가 생생합니다. ‘하나님 총선이 끝난 이후 대한민국에 불어닥칠 정치적 광풍 속에서 기적을 이루는데 작은 도구로 저를 써 주십시오.’ 라는 기도였어요. 원래 이 기도의 의도는 ‘선거가 끝나면 내가 재선의원이 되고 국회에서 우리가 다수의석을 차지 할 테니 지금까지 만들어온 악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투쟁과 싸움이 있을 것인데, 그 안에서 제가 공의롭게 법을 고치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생각과는 다르게 그 기도를 통해 총선 이후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광풍 속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도구로,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로 저를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우선은 저를 기자 생활 경험을 통해 부정선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예비해 주셨어요. 그리고 공천에서 먼저 떨어졌다가 다시 후보가 된 후 출마한 후 결국 떨어지게 하셨어요. 만약 제가 그때 당선 됐으면 지금처럼 부정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천을 받고 당연히 붙어야 할 곳에서 떨어지고 나니 부정선거 이슈를 가지고 싸울 수 밖에 없는 위치로 하나님이 앉혀 놓으신 것입니다.”

-부정선거 투쟁 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한 번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굴곡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셨어요. 특히 지난해 ‘4·15 총선 무효 소송 재검표’ 시작일인 6월 28일에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실망하지 않도록 여호수아 1장9절(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시 1년 2개월간 재검표를 얻어내기 위해 힘들게 투쟁했던 기간을 떠올리며 힘들게 얻어낸 이 기회가 꽃을 피우고 결론이 나면 세상이 놀라고 6월 29일부터는 나의 명예 회복과 함께 내가 옳았다는 이야기도 듣고 일상으로 되돌아 갈 것을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여호수아 1장9절 말씀을 주신 거였어요. 

민 전 의원은 "재검표 결과에 실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미리 여호수아 1장9절 말씀을 주셨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민 전 의원은 "재검표 결과에 실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미리 여호수아 1장9절 말씀을 주셨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그리고 아시다시피 당시 재검표에 충격적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모든 숫자가 틀릴거라 생각했는데, 숫자가 맞았어요.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숫자가 맞춰져 있어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건 사람이 보는 관점이었고, 재검표 때 나온 ‘일장기 투표’와 ‘배춧잎 투표용지’ 등의 부정투표 증거가 더 나와 황교안 전 총리까지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황교안 전 총리를 만났는데 기도중에 ‘4.15 부정선거를 위해 싸우라’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에게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소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급성폐렴에서 극적으로 하나님이 살려주셔...“‘죽으면 죽으리라’로 제 소명 이뤘죠”

-올해 3월 코로나 확진 후 급성폐렴으로 악화 돼 혼수상태까지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와 급성 중증 폐렴으로 생존 가능성 40%의 극한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됐습니다. 고통 속에서 헤맬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을 하라.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하나님은 민경욱 너의 하나님이지, 남의 하나님이 아니다’란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천사처럼 홀연히 나타나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청소부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간증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소명을 이룬 기특한 나의 종이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극적인 순간 그분의 손바닥으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당시 중환자실에서 담당 교수들의 예상도 비관적이었지만, 결국 저는 계속 호전됐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저에겐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날 것이란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을 지난 이후에는 계속 호전됐습니다.

당시 12일 동안 중환자실과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부정선거의 실태가 이번에도 나타나고 세상에 알려진 후에 죽는 거니까, 정권교체도 됐고 내가 죽어도 사람들은 민경욱을 부정선거 투쟁과 함께 기억해주리라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소명을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제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소명을 이뤘습니다. 

2020년 추석 연휴 기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찾아 백악관과 대법원 앞에서 부정선거 1인 시위를 벌인 민경욱 전 의원. /민경욱 페이스북
2020년 추석 연휴 기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찾아 백악관과 대법원 앞에서 부정선거 1인 시위를 벌인 민경욱 전 의원. /민경욱 페이스북

처음 아프기 시작한 것이 2월말 이었는데, 그때부터 코로나에 걸렸고, 폐렴도 왔습니다. 심각한 줄은 모르고 있다가 선거를 마치고 쓰러졌습니다. 선거일에 투표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투표를 하고 페이스북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글을 남겼어요. 그리고 결국 정권교체가 됐습니다.”

-이번에 아팠던 일을 통해 마음이 더 겸손하게 되셨다구요.

“국투본(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은 지난 2년간 우리나라를 살린 조직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 저에게 겸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거 후 10여일 동안 입원해 있으니까 결과와 상관없이 제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았어요. 사람들도 ‘정권이 교체됐는데 이렇게 되는데 공이 큰 민경욱은 지금 어디 가서 이렇게 조용하지?’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제가 교만할 수 있는 자리를 피하게 해 주셨습니다.” 

◇“국투본은 현재 법정투쟁에 전념...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 나오도록 기도해 달라”

-현재 국투본 활동은 어떤 점에 주력하고 계신가요.

“이번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이겼는데 사실 이것이 부정선거의 증거입니다. 24만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는데, 무효표가 30만표나 나왔어요. 그리고 평소 민주당의 행태로 볼 때, 자신들의 패배를 쉽게 인정했다는 것, 그 사실도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봅니다.

국투본은 현재 대법원의 판결이 중요하다는 생각 아래 법정투쟁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제 법원의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서 국투본의 의로운 싸움의 방향은 정해질 것입니다. 정점을 찍는 대법관의 의로운 판결이 필요합니다.”

-자유일보 독자들에게 기도부탁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다면.

“우리들이 그간 벌여온 것은 ‘무혈 시민혁명’입니다. 60여년 전, 3.15 부정선거 때는 피를 흘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년간 무혈 시민혁명을 벌여왔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무혈로 남을지는 이제 대법원에 달려있습니다. 그들이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면 무혈 시민혁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저항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부정선거의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고 저에게도 알맞은 세상의 평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정하시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니겠지만요. 5월 말에 대법원 결심공판과 이어질 판결 때 옳고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도록 대법관들을 움직여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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