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지상파TV 예능 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과 ‘여자 손흥민’ 송소희를 언급하겠다고 며칠 전 예고했다. ‘골때녀’가 병든 페미니즘의 이 시대 새로운 여성주의, 건강한 여성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는데 그 프로는 이미 광팬이 수두룩하다. 나 같은 축알못(축구 잘 모르는 사람)은 낄 자리도 없다. 실은 나는 KBS이사 출신임에도 TV드라마·예능프로에 질색하는 타입인데 요즘엔 달라졌다. ‘골때녀’ 본방은 물론 VOD-유튜브로 보고 또 본다. 볼 때마다 주먹 불끈 쥔 채 환호하니 전에 없던 일이다. 그걸 화제 삼아 30대 아들녀석과 대화도 한다.

물론 그 프로에 흠집은 있다. 얼마 전 터졌던 편집조작 사건은 정말 씻지 못할 제작진의 과오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프로에 매료되는 건 국악소녀 송소희 때문이다. 이미 시즌2의 득점왕에 올랐고, 숫제 ‘송흥민’으로 불린다. 반 박자 빠른 슈팅, 전광석화 드리볼, 패스 뒤 빈 공간을 찾아 득점을 노리는 경기감각 모두가 경이롭다. 그러면서도 경기 내내 생글생글거리니 인터넷은 온통 난리다. 그녀를 손흥민과 결혼시켜 축구 신동 2세를 빨리 생산하라는 성화다.

오해 마시라. 나는 시즌1의 최강자 박선영(배우)을 비롯한 신효범(가수), 조혜련(개그우먼)에도 경의를 표한다. 믿기 어렵게도 그들 모두가 50대다. 그 프로는 K리그 못지않은 긴장감 넘치는 경기의 연속인데, 그 안에서 환호하고 눈물 뚝뚝 흘리는 여성 모습은 매우 매우 이례적이다. 여성의 상투적 이미지를 훌쩍 벗어던진 것이다. 그럼 슈퍼우먼인가? 아니다. 끝내 여성성을 잃지 않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물어보자. 당신은 그런 걸 어떤 소설·영화·드라마에서 본 일 있었던가? ‘골때녀’는 장르 구분을 떠나 TV콘텐츠의 위대한 승리다.

그런 ‘골때녀’를 나는 문명사적으론 신(新) 정음정양(正陰正陽)의 등장이라고 푼다. 정음정양은 후천개벽 시대의 새 남녀 모습이라고 구한말 민족종교가 예언했다. ‘골때녀’는 그런 폼나는 정음정양에 ‘썸씽 뉴’를 가미했기 때문에 신 정음정양이다. 정치학자 하비 맨스필드는 멋진 남성, 멋진 여성이 실종됐고, 그게 세상을 망가뜨린다고 지적했다. 백번 맞는 소리다.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자. 우리에겐 ‘골때녀’가 있다. 그걸 통해 새로운 여성성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병든 페미니즘도 함께 치유되지 않을까? ‘골때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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