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일본어를 매개로 20세기 한국어 중국어에 유입된 무수한 신조어의 하나다. 원래 ‘roman’ 즉, 동경·정열·이국 취미 또는 모험과 러브스토리를 담은 기담(奇譚)을 가리키는 어휘였다. 차차 18~19세기 유럽의 예술·철학·정치 등 삶 전반에 전개된 정신적 경향인 로만티즘으로 발전한다. 이성보다 감정을 우선하는 태도나 분위기 등 감성적 정서 현상 전반을 아우르게 됐다.

한국·일본에서 한때 ‘낭만’ 하면, 꽃다발과 양초로 장식된 테이블을 둘러싸고 와인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에선 한참 진행 중이다. 서구근대적 생활양식에 대한 동경과 함께 ‘낭만’은 일상용어로 자리잡는다. 고전중국어에서의 浪漫은 특별한 의미가 아니었고 한 단어로 쓰이는 일 또한 드물었다. 쓰인다 해도 ‘마음대로’ ‘흐드러지게 만발하다’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19세기 일본인들은 한동안 roman을 가타가나 ‘ロマン(로망)’으로 음역했다. 계몽주의·고전주의·사실주의 등 대부분 의역한 신조어들과 달리, 원음을 그대로 살려 외래어로 받아들인 것이다. ‘로망’ ‘로만틱’ ‘로만티즘’이 그대로 일본어가 됐다. 20세기초 나쯔메 소오세키(夏目漱石)가 드디어 ‘물결 浪 질펀한 漫’자를 얹어 쓰기 시작한다. 근대일본 최고의 문호로 꼽히는, 1000엔권 지폐 속 인물이다.

혁명과 영웅의 시대정신 로만티즘이 절대왕정 하에서 정치적 함의가 거세된 채 동아시아에 수입되긴 했으나 ‘浪漫’이란 한자를 꽂아 넣은 것은 뛰어난 해석이다. ‘질풍노도(Strum und Drang)’로 대변되는 본고장 로만티즘의 핵심을 포착한 조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단순한 직관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소오세키 이래 일본인들은 ‘로망’이라 발음하며 ‘浪漫’이라는 한자 의미를 새기게 됐다. ‘浪漫(ろうまん, 로망)’은 중국어로 ‘랑만(langman)’, 우리말로 발음하면 두음법칙의 영향으로 ‘낭만’이 된다. 이런 역사를 거쳐 ‘청춘의 낭만’ ‘중년의 로망’ 등등의 표현이 우리 일상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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