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공격 위협 시 핵을 포함한 모든 방어 역량을 한국 방어에 투입하는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확인했다. 한미 정상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라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한미의 대응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려는 듯, 5월 25일 새벽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한 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이른바 ‘섞어 쏘기’를 한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4시간 뒤, 한국군은 탄도미사일 현무-2를, 미군은 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1발씩 대응 발사했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핵 폭격기, 핵 추진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1일 뒤인 6월 5일에는 평양 순안과 평남 개천 등 4곳에서 각각 2발, 모두 8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섞어 쏘기’를 했다. 이에 대응해서 우리 군도 다음날 새벽 에이태큼스 8발을 동해안 지역으로 사격하여 북한의 도발에 비례하는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했다. 또 같은 날 F-35A와 F-15K·KF-16 등 우리 공군 전투기 16대와 주한 미 공군 F-16 전투기 4대가 서해 공역에서 공격편대군을 구성해 적 위협에 대응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한미 정상 공동선언에서 천명했던 대응 의지와 능력을 단호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압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며 "(윤 대통령) 임기 중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라고 겁박 섞인 비판을 했다. 이쯤에서 정 전 장관에 ‘김정은이 핵 사용을 위협하면서 대한민국의 항복을 강요한다면, 전쟁 방지를 위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하는가’라는 반문해 본다.

‘흑백도’(黑白道)라는 중국 무협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비열한 암수를 사용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한다. 그러다 ‘적과 동일한 수법으로 하라’는 객잔(客棧)의 글을 보고는 그대로 실행하여 상대를 굴복시킨다. ‘핵에는 핵’ 대응 전략은, 당분간은 다소의 긴장 상황이 조성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적과 동일한 수법으로 상대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이다. 특히 북한의 60배에 달하는 국력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김정은이 미사일을 무제한 난사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이 같은 하드웨어적 대응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또 하나의 ‘적과 동일한 수법’이 필요하다. 다름 아니라, 북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통일전선을 북한 지역에 구축하는 것이다. 사실 김정은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북한 주민에게 처형되는 것이다. 통일전선은 이런 김정은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자의적 행동을 억제케 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북한 내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고려하면, 비핵화보다 훨씬 용이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제는 북한에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배급체계 마비에 따른 장마당의 확산, 정보 교환의 원천인 손전화 보급 확대와 더불어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과 정권의 유리(遊離) 등등…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동조도 냉전 시대와는 대단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여건에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대량 판매한 영업사원의 역발상적 사고를 더한다면, 북한 내 통일전선 구축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데 급급하면 안 된다. ‘Slow and steady’야말로 대북 정책 추진에 있어 명심해야 할 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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