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새 정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의혹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해수부 공무원 월북 조작사건은 은폐·회유 공작 시도까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국민 몰래 북으로 돌려보내려다 들통났던 북한어부 북송 사건도 하나 둘씩 진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이 사건들이 월성1호기 평가 조작 사건이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같은 정권 차원 의혹들보다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문재인 정권이 사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려 했다면, 그것은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법적 문제를 떠나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 힘없는 약자들을 위한 정부를 자부했던 지난 정권은 그와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일관했다. 마치 백성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던 구중궁궐의 절대 왕정이 재림한 듯보였다. 그러면서 권력의 비리와 민낯을 드러내려는 모든 견제 장치들을 철저히 장악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무력화시키려 무진 애를 썼다.

일반 국민들도 당연히 이 사건들에 대해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의 일방적 발표로 사건이 종료되고 삽시간에 의혹들이 수그러지는 일이 일상화됐다. 더 이해되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점 투성이였던 그리고 주변의 몇 사람만 취재해도 정부 발표와 다른 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모든 언론이 마치 입을 맞춘 듯 침묵했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을 감시하는 데 있다. 즉,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을 국민의 알권리를 대행하는 기구라 한다. 그렇지만 지난 정권 내내 우리 언론들은 국민들의 알권리와 권력 감시 기능을 완전히 포기한 듯했다. 권력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스스로 알아서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앞장서서 은폐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언론은 은폐를 넘어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데 열을 올렸고, 어떤 언론은 발표된 내용만 보도했고, 또 어떤 언론은 잠시 의혹을 제기하다 꼬리 내리곤 했다. "나는 앞장서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또 "그래도 우리는 의혹은 제기했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사실을 은폐했거나 속였던 것이 드러난다면, 이 언론들 모두 공범이거나 최소한 미필적고의에 의한 조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정권과 유착해 국민의 눈을 멀게 한 언론의 행태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런 관행이 지속되면서 정치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는 메커니즘이 구조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언론의 공익성·공정성·공영성 같은 이데올로기로 뉴스를 편성할 수 있는 언론 특히 방송을 정치권력이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뉴스를 편성하는 매체들 대다수가 공익을 명분으로 정부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소유·통제하고 있는 KBS, MBC는 물론이고 YTN, 연합뉴스 채널 같은 뉴스 매체들도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거나 거버넌스를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민영방송인 SBS와 종합편성채널들도 재허가 심사제도 등을 통해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에서는 그런 압박을 실행했었다.

이처럼 정권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구현하는 제대로 된 보도가 이루어질 리 없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권력인 정치권력은 감시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취약한 구조이고 전체주의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내건 현 정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언론에 대한 통제권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야 철새처럼 권력을 쫓아 몰려다니는 고질적인 언론 부역자들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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