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요즘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란 구시대의 낡고 무의미한 도그마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40대 이하 세대들은 통일무용론 심지어 통일거부론까지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은 우파 지식인들일수록 이런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막대한 통일 비용부터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까지 다양하다. 차라리 분단 상태로 중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북한이라는 완충장치를 두는 것이 안보에 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남북한 사이에 이념적 정서적 이질화가 심화되어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통일을 부정하는 순간 남는 것은 평화공존이라는 명제다. 논리적으로 이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평화’는 누구나 심정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단어지만, 냉엄한 국제 질서에서 평화공존은 그냥 무장해제론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것은 또 그리고 피흘리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공짜 근성의 발로이다.

통일은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의 분단 상태가 안정적일 수 없는, 극히 불안정한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다. 분단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동요하면서 보다 안정적인 구조 즉 통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가 통일을 부정하고 회피하면 할수록 통일의 주도권은 북한과 중국이 가져가게 된다.

중국에게 한반도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인 요충지다. 이것은 유사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기본 구조다. 그리고 남북분단 상태는 중국이 끊임없이 한반도와 대한민국에 개입해 흔들 수 있는 레버리지가 된다. 그런데 분단을 고착화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망상이거나 의도적인 왜곡일 뿐이다.

무엇보다 남북분단은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절실한 과제인 국민국가 수립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적 과제는 평소에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이 가시화되면 우리의 필수적인 과제를 수행할 타이밍을 이미 놓쳐버린 경우가 많다.

학교 숙제는 안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숙제는 회피할 수 없다. 역사는 나중에 몇 배 이자까지 덧붙여서 우리 눈앞에 청구서를 들이밀게 된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대한민국의 내부 갈등도 실은 분단 구조의 내적 발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분단이 대한민국 국내의 갈등구조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내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갈등이 점점 내전 양상을 띠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남북 간의 이질적 체제가 해소되지 않는 탓이 크다. 통일만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사실상 통일론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북진통일론이 정치적으로 폐기되고 현재는 평화통일이 일종의 공식 통일론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는 통일의 결과이지, 통일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는 없다. 평화통일론은 사실상 북한의 연방제통일론에 대한 호응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언제부터인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라는 당위가 실종된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과제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국민적인 상식으로 각인시켜가는 작업부터 서둘러야 한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은 동독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방법론적인 유연함을 유지했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과 통일의 필연성에 대해서는 타협한 적이 없었다. 이 원칙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즉 대한민국 체제로의 흡수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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