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에 가자 /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도 아직 /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전생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 던지지 /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란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 시작과 끝이 무한해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우리는 /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왼손을 들고 / 왼발을 들고

이장욱(1968~ )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동회에서 동사무소, 뒤이어 주민센터. 앞으로 어떻게 변천할지 모르겠다. 동사무소는 우리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태어남과 죽음, 결혼과 이혼,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연금, 의료, 가족관계증명 외에도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행정 최일선 기관이다. 이렇듯 국가는 국민을 관리하며, 철학자 호르크하이머는 이런 사회를 관리사회라 명했다.

시인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동사무소란 그 질문이 없는 곳’이라고. 질문이 없다는 것은, 질문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질문을 해봐야 소용없는 곳이기도 하다는 중의성을 띤다. 호르크하이머에 의하면 산업사회의 인간은 관리를 피할 수 없는데, 이러한 상태는 노예처럼 자유를 박탈한다. 관리사회에서의 인간해방은 호르크하이머 철학의 평생과제였다.

유머러스하게 딴청부리듯 동사무소를 노래하는 이장욱 시인은 예술표현의 정공법을 택했다.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는 가볍고 익살스럽게 다루어야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삶에 의문이 들면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 왼손을 들고 / 왼발을 들고’ 동사무소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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